현재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진보와 보수, 좌·우로 나뉘어 서로를 무시하고 비난한다. 매 선거 때마다 주요 공약으로 ‘통합’이 거론되는 이유다.
미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에서 배운 의사결정 방식으로 양극화된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스타트업이 있다. 옥소폴리틱스다. 가입자를 성향별로 5가지 동물로 나누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하는 커뮤니티 기반 정치 데이터 플랫폼이다.
최근 미 실리콘밸리 산마테오 사무실에서 만난 유호현(42) 옥소폴리틱스 대표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대변되는 정치 플랫폼을 꿈꾼다”고 했다. “모든 게 좌우로 나뉘어 있어서 그 중간중간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은 잘 드러나지가 않아요. 포털 사이트나 다른 정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죠. 실리콘밸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결정 방식을 접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 실리콘밸리 빅테크 엔지니어 ‘옥소폴리틱스’ 유호현 대표 인터뷰… “정치의 아마존이 될 겁니다”
유 대표는 연세대 99학번이다. 영문학과 문헌정보학을 이중전공했다.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정보학(인포메이션 사이언스)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말 트위터에 입사해 자연어처리팀 리더 엔지니어를 지냈다. 그가 트위터에서 한 일은 한국어 기반 트위터 검색 기능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어는 조사가 많고 다양한 동사 활용이 있어 자연어 처리 측면에서 매우 어렵다”며 “예컨대 이전까진 ‘트위터는’, ‘트위터를’, ‘트위터가’ 라는 말이 각각 하나의 단어로 인식됐다. 이러한 구조에서 단어를 명확히 인식해 ‘트위터’라는 단어가 검색되도록 개선했다”고 했다.
트위터에서 3년간 일한 후 2016년부터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 엔지니어로 일했다. 에어비앤비 시스템 내 결제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후 신사업팀을 거쳤고, 2020년 5월 코로나 사태로 에어비앤비가 직격을 맞으며 해고를 당했다. “당시 개인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정치 플랫폼인 옥소폴리틱스 베타를 개인적으로 만들었어요. 취미삼아 만들었는데 가입자가 늘면서 탄력을 점차 받던 시점이었죠.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에어비앤비가 4달치 월급을 줬는데, 일단 3개월만 옥소폴리틱스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생각 다른 사람의 입장 이해 쉬워져…실리콘밸리 의사 결정방식
정치에 발을 담궜던 아버지 덕분에 유 대표는 어릴적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가 된 뒤에도 그 관심은 이어졌다. 그는 “엔지니어의 진짜 꿈은 세상에 임팩트를 남기는 툴(도구)을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선 다양성의 문화,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목소리가 대변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유호현 대표가 만든 옥소폴리틱스 이름은 O와 X로 하는 정치를 뜻한다. 앱을 설치해 주어진 특정 사안에 대해 답을 하면 옥소폴리틱스가 이를 파악해 호랑이(강경 진보), 하마(중도 진보), 코끼리(중도), 공룡(중도 보수), 사자(강경 보수) 등 5가지 동물 부족으로 구분해준다. 자신이 속한 부족의 게시판에서 정치 현안에 대해 글을 남길 수 있고, 다른 부족의 게시판은 ‘눈팅(눈으로만 보는 것)’만 가능하다.
유 대표는 “한국 정치 커뮤니티엔 입장이나 데이터는 없고, 말빨만 있다”며 “서로를 이해하려면 각자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전엔 각자의 정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욕만 했잖아요. 하지만 5부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성향이 무엇인지, 그 성향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직접 옥소폴리틱스 안에서 투표를 붙여볼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자기 의견을 객관화할수도 있죠.”
◇ “정치의 아마존 될 것”
유 대표는 이를 실리콘밸리에서 배웠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에선 의사결정을 할 때 권위나 위계질서가 통하지 않는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CEO가 각자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객관적으로 의사결정한다. 유 대표는 “정치판에선 모두가 각자의 입장을 숨기고,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로 일반화를 한다”며 “서로의 입장차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놓고 보면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옥소폴리틱스는 현재 월 사용자가 18만명이다. 올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며 작년보다 200% 성장했다. 옥소폴리틱스를 통해서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방 측 논리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됐다는 반응도 많다. 유 대표는 “옥소폴리틱스는 각자의 정치 성향이 갖는 에코챔버(같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공간)를 깨서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에코챔버를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어머니와 예전엔 정치적인 사안마다 다퉜는데 옥소폴리틱스를 하면서 서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옥소폴리틱스는 작년 11월 엠와이소셜컴퍼니, 오픈워터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20억원의 프리A 투자를 받았고, 현재 시리즈A 펀딩을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미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옥소폴리틱스의 목표는 ‘정치의 아마존’이 되는 것이다. “아마존에 가면 다 있잖아요. 옥소폴리틱스에 가면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도 보고, 정치 뉴스도 보고, 입법청원도 하고, 정치인과 소통도 하고, 후원도 하는 등 정치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