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 6일 음식배달 서비스 업체 그럽허브의 지분 2%를 인수하기로 했다. 향후 지분을 최대 15%까지 늘릴 수 있는 옵션도 획득했다. 아마존은 자사 유료 멤버십 회원들에게 그럽허브 배달 서비스를 1년간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구체적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등 대외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아마존은 자사 유료 멤버십 혜택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그럽허브에 대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지난 13일엔 게임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사 유니티가 이스라엘의 모바일 애드테크(광고기술) 기업 아이언소스를 44억달러(5조76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유니티의 M&A(인수·합병) 역사상 최대 금액이다. 유니티는 인수를 통해 모바일 앱 수익화에 나설 계획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긴축 바람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미국 빅테크 기업과 투자회사들이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기업 몸값이 떨어진 상황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사냥의 시간’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의 인수와 투자 활발
금융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M&A 시장 규모는 2조3000억달러(3012조원)다. 코로나 특수로 M&A 시장이 달아올랐던 작년 상반기(3조달러)보다는 23% 줄었지만 2019년(2조2000억달러)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보유 현금이 많은 기업들이 불황기 M&A의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통신칩 업체 브로드컴은 지난 5월 미국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업체 VM웨어를 610억달러(80조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687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데 이은, 올해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 반도체 업체 AMD는 지난 5월 19억달러에 데이터 분산 서비스 업체 펜샌도를 인수했고, 지난 6월 사이버 보안 업체 센티넬원은 다른 보안 업체 아티보 네트웍스를 6억1650만달러에 인수했다.
특히 가상화폐 가격 폭락으로 연쇄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가상화폐·블록체인 업계에서도 인수합병 투자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FTX는 가상화폐 대출 업체 블록파이에 4억달러 규모의 금액을 빌려주며 추후 블록파이를 인수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다른 가상화폐 대출 업체 넥소는 최근 모라토리엄(채무 지불 유예)을 신청한 경쟁 업체 볼드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컨설팅사 PwC는 이 같은 투자 사례들에 대해 “경기 악화로 기업 가치가 하락하자 이를 수익을 창출할 좋은 기회로 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옥석 가리며 투자하는 VC
테크 업계에선 최근 경기 침체로 해고를 당한 엔지니어를 노리는 ‘인재 사냥’도 한창이다. 미국의 기업 전문 싱크탱크 펑크스앤핀스트라이프가 지난 4월부터 90일간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서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퇴사한 457명을 분석한 결과, 경쟁사인 리비안과 루시드, 빅테크인 애플과 아마존 등이 이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비안은 테슬라 퇴사자 56명을, 루시드는 34명을 채용했다. 아마존과 애플은 각각 51명씩을 스카우트했다. 미 IT 매체 인사이더는 “6개월 전만 해도 인력 시장에 나온 개발자와 엔지니어가 사상 최저 수준이었지만 최근 해고가 늘면서 고급 엔지니어가 공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스타트업 몸값이 너무 높아 투자 검토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이 속도전을 벌였지만, 지금은 제대로 검증하고 낮은 가격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VC들은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실리콘밸리 유명 VC인 세콰이아캐피털은 지난달 인도와 동남아시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28억5000만달러 규모의 펀드를 새로 만들었고, 미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은 올 상반기 아시아에서 작년의 2배 수준인 72건의 투자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