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최근 몸값 9조원의 미국 헬스케어 기업 ‘시그니파이 헬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65세 이상 고령층을 상대로 건강 진단과 원격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인수전엔 유나이티드 헬스, CVS헬스가 참여해 인수 금액이 시가총액보다 20% 높은 80억달러(약 10조7000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마존이 올 들어 잇따라 대규모 인수합병에 나섰다. ‘아마존 저승사자’로 불리는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의 아마존 반독점 행위 조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서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움츠린 구글·애플 등 다른 빅테크와는 다른 모습이다. 테크 업계에선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의 뒤를 이어 작년 7월 아마존을 맡은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년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본다. 그의 결정이 아마존 장기 성장에 득(得)이 될지 독(毒)이 될지 테크 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만 인수합병에 30조원 쏟아

아마존은 지난 5일 로봇 청소기 ‘룸바’ 제조 업체 아이로봇을 17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아이로봇 시가총액에 22% 프리미엄을 얹은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했다. 지난 7월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메디컬을 39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고, 3월엔 영화 제작사인 MGM을 84억5000만달러(약 11조3000억원)에 사들였다. 인수전이 진행 중인 시그니파이 헬스 건을 포함하면 올해만 M&A에 쏟아부은 자금이 220억5000만달러(약 29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3년간 M&A에 쓴 자금의 10배 수준이다.

2017년 식료품 체인 홀푸드를 137억달러에 인수한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이 없었던 제프 베이조스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 투자회사인 웨드부시시큐리티의 마이클 패처 매니징디렉터는 “제프 베이조스는 회사 내부에 모든 것을 구축하려고 했지만, 앤디 재시는 외부에서 새로운 것을 인수해 성장 동력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실제로 아마존 성장세는 문어발 확장의 대명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꺾이고 있다. 올 2분기엔 20억2800만달러 순손실을 냈다. 2분기 연속 적자다. 2분기 매출 증가율은 7.2%로 2001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클라우드(가상서버)·광고 사업이 성장하지만, 주력인 온라인 사업 매출이 감소한 탓이다. 아마존 내부 사정도 어렵다. 아마존 물류창고 곳곳에서 노조 결성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1년간 성과 없던 앤디 재시의 승부수

실리콘밸리에선 아마존의 공격적인 인수합병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앤디 재시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취임 후 실적 부진에 빠진 앤디 재시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재시 CEO가 시그니파이 헬스 인수에 나선 것도 헬스케어를 가장 유망한 미래 먹거리로 보고 막대한 베팅을 한 것이라고 테크 업계는 분석한다. 금융평가사 DA데이비슨의 톰 포르테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지금 아마존 침체가 글로벌 거시경제 위기 탓인지 CEO의 능력 탓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분주하다”며 “(지금과 같은 부진이 계속되면) 투자자들은 어느 시점에 재시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존이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도 모든 M&A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반독점 행위를 조사하고 있는 FTC가 아마존의 인수합병을 반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단기간 다수의 인수합병을 문어발처럼 추진하는 전략이 오히려 FTC 규제를 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재시 CEO의 대규모 인수 전략은 FTC로 하여금 더 많은 M&A 거래를 검토하게 하고 또 모두를 반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두더지 잡기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