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가 15일(현지시각) 디자인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피그마를 200억달러(28조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절반은 현금, 절반은 주식으로 인수하는 형태로, 어도비 역사상 최고 인수액이다.
어도비가 인수하는 피그마는 2012년 설립된 클라우드(가상서버)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피그마의 디자인 소프트웨어는 여러 명의 작업자가 클라우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도비의 것보다 가볍고 확장성이 좋다는 평가를 들으며 피그마는 폭풍 성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구글, 에어비앤비, 허먼밀러 등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1년 전 기업가치는 100억달러(14조원)로 평가됐다.
이는 어도비에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프로 등 사진과 비디오, 디자인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로 일가를 이룬 어도비는 최근 피그마와 캔바, 라이트릭스 등 신생 업체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다. 올 들어 어도비 주가는 45% 폭락했다.
테크 업계에서는 어도비가 위기 타개책으로 대규모 인수합병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본다. 피그마 인수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중대한 위협이 될 유망 기업을 흡수한 방어적인 움직이라는 것이다.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최고경영자(CEO)는 “어도비의 위대함은 유기적 혁신과 인수를 통해 새로운 범주를 만들고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는 능력에 있다”며 “피그마와의 조합은 혁신적이며 협업 창의성에 대한 비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어도비는 피그마 인수로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냉정하게 봤다. 비싼 거래라는 것이다. 피그마의 연간 반복 수익은 4억달러 수준이다. 인수금액이 피그마 연간 수익의 50배에 달한다. 시너지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아누라그 라나 연구원은 “피그마 인수로 어도비가 얻게 되는 것은 전체 매출의 2% 미만의 성장 정도”라고 했다. 일각에선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계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어도비가 너무나 많은 돈을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어도비 주가는 전날보다 16.79% 폭락한 309.13달러로 마감했다. 2010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한편 이날 어도비는 올 6~8월 실적을 공개했다. 매출은 1년 전보다 13% 늘어난 44억3300만달러, 순이익은 6.3% 감소한 11억3600만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