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얼마 버세요?”

미국인 해나 윌리엄스(25)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길거리에서 시민을 붙잡고 직업과 연봉을 물어본다. 시민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쑥스러운 듯 자신의 연봉을 밝힌다. 행인에게 직업과 임금을 묻고 답하는 영상을 올리는 윌리엄스의 틱톡계정 ‘월급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거리(Salary Transparent Street)’에 MZ세대는 열광했다. 팔로어 85만여 명에 ‘좋아요’ 1670만 개를 기록했다. 윌리엄스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여러 번 옮겼는데 새로운 직종에선 얼마나 주는지 정보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며 이 영상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얼마를 버느냐’고 묻는 게 실례가 아니라 당연한 시대가 왔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선 법적으로 기업이 연봉을 공개하도록 하는가 하면, 일부 기업들은 자진해서 연봉을 알리기도 한다. 20~30대들은 이직 시에 후임자를 위해서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받은 연봉을 올려놓거나 취업 사이트에서 자신의 직장, 직급, 연차와 함께 ‘연봉 인증’을 하기도 한다. 인종이나 성별 때문에 임금 차별을 받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시작한 임금 공개는 지난해부터 ‘대이직 시대’를 맞아 구직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됐다.

◇미국·유럽에선 연봉 공개 ‘법’으로

캘리포니아주는 지난달 27일 임직원 15명 이상 규모 사업장에선 채용 공고에 급여 수준을 명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나아가 미국 주(州) 중에서는 최초로 1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성별과 인종 간의 급여 격차를 명시하도록 했다. 캘리포니아는 근로자 수가 1900만명 이상으로, 미국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주다. 내년 1월 1일에 이 법이 시행되면 연봉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은 애플, 구글, 메타, 넷플릭스와 같은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 신규 입사자의 연봉 정보도 공개된다.

기업이 채용 공고에서 급여 범위를 밝혀야 하는 일명 ‘급여 투명화법’은 이미 미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콜로라도주와 워싱턴주는 지난해 이 법안을 도입했고, 뉴욕시도 1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내년부터 미국 전역의 채용 공고에서 급여 정보를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일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업 간 임금 비교를 위해 연봉 공개는 어쩔 수 없는 대세가 됐다”며 “실리콘밸리의 빅테크가 연봉 공개를 시작하면 다른 기업들도 따를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임금 공개 법안이 제정되고 있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상장 기업은 최고 경영자 임금, 직원 평균 임금과 중위 임금(임금의 중간값)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직급·직무가 동일한 동료의 연봉, 성과급, 복지 혜택 자료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임금 공개법’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게임 회사 이노게임스는 지난 7월부터 자진해서 모든 직종·직급 연봉 상·하한을 공개하고 있다.

◇MZ세대 “연봉, 주는 대로 받지 않는다”

임금 공개 요구는 ‘공정’을 원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직을 할 때 후임자를 위해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 “나는 OOO달러를 받았으니, 당신은 XXX달러까지 요구하라”는 글을 올리거나 구직 사이트인 글래스도어, 페이스케일에 직장, 직급, 연봉, 복지 혜택을 구체적으로 올려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 BBC는 “MZ세대에게 더 이상 임금 공개는 금기 사항이 아니다”라며 “이들은 임금을 공정하게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인종이나 성별 때문에 임금 차별을 받거나 자신의 성과나 역량에 비해서 적은 연봉을 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국내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평가받은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의 임원은 “요즘 20~30대는 이직이 잦다 보니 회사를 상대로 연봉 협상을 하는 경험이 많고, 협상 테이블에서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임금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회사에도 당당히 요구한다”고 했다.

만약 국내 기업에서도 임직원의 연봉과 성과급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같은 직급이라도 임금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줘야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개인의 역량 평가를 더 세밀하고 신중하게 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 간 연봉 경쟁도, 임직원 간 인사 고과 경쟁도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