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혁명이 진행 중입니다. AI가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날이 어느 순간, 갑자기 올 겁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서 최근 만난 제프 딘(Dean·55) 구글리서치·AI 총괄 선임 부사장은 AI의 발전상을 이같이 설명했다. 1999년 구글에 ‘입사 25번’으로 합류한 딘은 구글의 핵심 소프트웨어와 AI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왔다. 쟁쟁한 개발자들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에서 ‘전설의 엔지니어’로 불리기까지 한다.
딘은 이날 인터뷰 장소에 청바지와 캐주얼 복장을 한 전형적 실리콘밸리 개발자 모습으로 나타났다. 구글의 손꼽히는 핵심 인재지만 여전히 일반 엔지니어와 동일한 책상에서 일한다. 본지는 신년을 앞두고 진행한 딘과의 인터뷰를 통해 AI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봤다.
◇“AI, 인간 머릿속 잠금 해제 장치”
최근 우리 사회는 AI의 급속한 발전을 목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등장한 오픈AI의 채팅형 AI ‘챗GPT’는 인간 뺨치는 수준의 답변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해 딘은 “AI가 인간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라며 “AI는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풀어주는 잠금 해제 장치가 되고 있다. 다시말해 인간의 능력을 더욱 끄집어내는, 인간의 한계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6년 구글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로 대중의 머릿속에 AI의 존재를 단단히 각인시켰다. 당시엔 AI가 특정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는 앞으로 AI가 일상생활에 더 폭넓게 쓰이며 복잡한 현실 세계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난제에 부딪혔던 모든 과학 분야가 AI 덕분에 쉽게 이해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인간의 DNA 서열이나 단백질 구조도 AI로 알 수 있게 됐죠. 앞으로 AI가 새로운 배터리 물질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발전을 계속 보게 될 겁니다.” 구글도 지난해 홍수 지역을 예측하고, 산불의 확산세를 추정하는 AI를 선보이는 등 인간을 돕는 다양한 AI를 선보이고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두려움도 커진다. 인간의 편견과 오류를 빠르게 학습하고, 결국엔 공상과학 영화처럼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딘은 “AI를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데이터엔 인간의 편견이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지만, AI가 덜 편향되도록 하는 많은 방법이 있고 강도 높은 연구 역시 지속하고 있다”며 “AI는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종할 수 있는 존재”라고 답했다. 마치 자녀가 특정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부모가 가이드를 주는 것처럼, 인간도 AI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 혼자선 유용한 AI 못 만들어”
“AI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변할 것”이란 일각의 견해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꿨지만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던 것처럼, AI의 등장 역시 그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가져오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딘은 “AI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며 “AI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했다. “인간과 AI의 관계는 파트너십”이라는 것이다.
구글은 AI 개발에 대한 7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AI는 인간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 ‘AI의 행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는 식이다. 딘은 엔지니어 혼자 유용한 AI를 만들 순 없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AI의 활용도를 함께 고민할 때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AI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딘은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는 방법으로 호기심과 협업을 꼽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 그리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제가 가지지 못한 다양한 스킬(skill)을 갖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즐깁니다. 새로운 관점과 지식을 배우면서, 저의 틀 안에서 벗어나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죠.”
☞제프 딘
구글에 1999년 합류한 뒤 각종 구글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맵리듀스(데이터 병렬 처리 기법), 빅테이블(데이터 저장 기법), 검색 광고 초기 알고리즘, 번역 기반 인프라 등을 개발했다. 성공한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지니어 사이에선 ‘제프 딘의 키보드에는 두 개의 키밖에 없다. 1과 0’ 처럼 그의 뛰어난 실력을 유머스럽게 표현한 ‘제프 딘의 29가지 진실’이란 리스트가 유명하다.
◇이하 전문
-작년 한해 갑자기 AI 발전이 가속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인공지능이 더 잘 작동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말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술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입력하면 이제 AI가 이해를 한다. 우리가 문장으로 서울 도심을 그려줘라고 하거나 기린을 그려줘라고 하면 이제 AI가 이러한 지시를 이해하고 관련 이미지를 만든다. 최근 2년간 인공지능 개발의 발전으로 사람과 컴퓨터 사이에 대화 수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작년 텍스트 투 이미지 같은 AI 모델은 놀라운 창작력을 보여줬다. AI가 이제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인가.
“텍스트 투 이미지 같은 생성AI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의 잠금을 해제하는 놀라운 도구다. 텍스트 투 이미지 모델을 통해 처음엔 인공지능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그려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 협업하며 원하는 것들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서울 도심에 있는 기린을 그려줘라고 할 때 AI가 잘 그리지 못한다면 이를 반복 수정해 원하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인간 혼자서 만들기 어려운 것들을 인공지능과 함께 창작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제 AI와 인간이 협업해 더 좋은 강력하고 흥미로운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인류가 AI의 존재를 처음으로 크게 깨달은 것은 2016년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었다. 그때의 AI와 현재의 AI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나도 이 대국 때 한국을 방문했었다. 알파고는 구글딥마인드의 내 동료들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알파고는 매우 특정 분야에 집중된 AI다. 이후 AI는 더 진화했다. 더 많은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일반적이 됐고, 다양한 것들이 섞여 있는 단락의 문단을 해석하는 것처럼 복잡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됐다. 지난 5~6년간 AI는 사람들의 여러 청각, 시각 등 감각기관의 입력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2016년에도 사실 텍스트투이미지 모델이 있었지만 결과물 품질이 좋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보는 시각적 결과물들이 AI의 발전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인간이 하지 못했던 일 중 AI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엄청 많다. 현재 우리는 AI의 기본 능력을 알아보며 그것들을 수많은 과학적 문제에 도입하는 단계다. 단순한 컴퓨팅 능력이 아닌 하나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과학 분야가 AI로 인해 더 쉽게 이해되는 단계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DNA 서열이나 단백질 구조 등 구체적인 종류의 정보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AI가 새로운 배터리 물질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큰 발전을 우리는 계속 보게될 것이다.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글의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 같은 복잡한 도로를 자율주행으로 승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AI는 어떻게 활용될까.
“지금까지의 AI는 특정 목적에 맞춰 개발된 것들이다. 앞으로의 AI는 매우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대된 형태일 것이다. 사용자가 AI에게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면, AI는 기존의 경험을 토대로 이를 이해하고 수행할 것이다. 예컨대 새로운 실험을 착수하면서 구체적 실행 방법을 모를 때도 AI를 통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AI 연구의 진짜 비전 중 하나는 AI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도록 만드냐에 있다. AI는 점점 더 많이 인간에게 도움을 줄 것이고,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AI가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순간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올 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작년 홍수 지역을 예측하고 산불의 확산세를 추정하는 AI를 선보였다. 제프 딘은 올해 구글이 내놓을 새로운 AI 기능을 밝히진 않았지만, 외신들에 따르면 구글은 챗GPT 같은 대화와 검색에 활용되는 진보된 AI를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AI는 학습을 하면서 인간의 편견을 학습하기도 한다. AI를 얼마나 믿을 수 있나.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재 우리가 AI를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데이터이다. 그 안에는 편견이나 오류가 포함돼 있다. AI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예컨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이용될 수도 있다. 그래서 AI의 다양한 종류의 편견에 대해 평가하려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짜 이미지를 감지하는 기술 개발을 포함해 우리는 AI가 긍정적으로만 활용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AI 모델들을 덜 편향되게 만드는 많은 모범 사례를 갖고 있고, 이를 위한 강력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다.”
-AI로 인해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인간의 삶이 많이 변화할 것 같은데?
“예컨대 전화나 인터넷처럼 많은 기술과 마찬가지로 AI도 인간의 삶의 여러 부분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이 갑자기 삶의 많은 것들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은 것처럼 AI도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닐 것이다. 인터넷은 우리가 현실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약간 바꿨을 뿐이다. AI도 마찬가지다. AI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AI는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AI가 공상영화처럼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나.
“난 AI가 사람과 협력해 사람 혼자서는 하지 못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지켜봐왔다. 난 인간과 AI의 관계를 파트너십이라고 본다. AI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놀라운 도구다. AI는 인간과 사회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힘을 실어줄 것이다.”
-AI를 항상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 수 있나. AI가 인간의 윤리를 배우고 자체적 도덕성을 구축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고, 현재까지 대화형 AI 모델을 구축하며 일종의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AI가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에 대한 매우 높은 수준의 지침을 주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자녀에게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약간의 가이던스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AI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종할 수 있다”
-AI를 더 안전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어떻게 하나.
“구글은 그래서 AI 원칙을 제시했다. AI 모델이 편향적이고 해로운 방법이어선 안된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AI의 행동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이다. 구글은 내부의 모든 AI 사용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고 외부에도 발표해 다른 AI 개발자들이 이를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AI와 인간의 관계를 정하는 중요 원칙이라고 본다. 이 원칙이 AI의 우려를 줄이고 AI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한국 테크 기업의 AI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AI에 있어서 막대한 발전을 이뤘다.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개발자들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의 테크 기업들도 매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 기업들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난 우리가 매우 강한 AI 발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AI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 AI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난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AI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거라 생각한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연구 절차가 필요한 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사람들을 위한 헬스케어 AI를 만들 때 단지 AI 개발자뿐만 아니라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관련 업계 종사자와 함께하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모여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세상을 정말 개선할 수 있는 AI를 만들 수 있다.”
-’제프딘의 진실’이라는 글을 읽어본 적 있나. 뛰어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건 2009년에 동료가 만우절 때 나에 대한 농담을 만들어 구글 내에 돌린 거다. 그 중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호기심과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 가능성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이나 다양한 동료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는 것도 포함한다. 내가 가장 즐겁게 일하던 프로젝트는 내가 가지지 않은 스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가진 기술이 없고, 나도 그들이 가진 기술이 없다. 일종의 집합체로 일한다. 개발자 어느 누구도 혼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생애 내내 꾸준히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은 기존에 자신이 가진 것들을 벗겨내고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