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말 기지국 설치 미비를 이유로 KT와 LG유플러스로부터 회수한 28GHz(기가헤르츠) 대역의 5G(5세대이동통신) 서비스용 주파수를 활용하기 위해 ‘제4 이동통신사 설립’ 카드를 꺼내 들었다. 통신 3사 독과점 체제인 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네 번째 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주파수를 할당받는 업체에 새 기지국 구축 부담을 최대한 낮춰주고 통신 3사의 기존 망(網)을 빌려 전국 서비스가 가능토록 해주는 ‘신규 사업자 진입 지원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통신 3사는 따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업계에선 “제4 이동통신사 등장은 기존 시장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정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자료=과기정통부

◇혜택 내걸고 새 사업자 모색

과기정통부의 지원 방안에 따르면, 제4 이동통신사는 전국망을 깔지 않아도 되며 수도권·강원권·충청권 등처럼 특정 권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 권역에 대해서도 전체를 커버하는 망을 구축할 필요 없이 경기장·공연장·대형 쇼핑센터처럼 인구가 밀집한 100~300개 장소·지점(핫스팟) 위주로 28GHz 기지국을 설치하면 된다. 수조원대인 망 투자비를 3000억원 수준으로 대폭 깎아준 것이다. 정부는 또 새 사업자가 통신 3사와 한전이 보유한 기간망과 광케이블 등 필수 설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스마트폰 제조사와 협의해 28GHz 대역용 5G스마트폰(현재는 3.5GHz용만 가능) 출시를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신규 사업자가 초반부터 전국 이동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기지국이 없는 지역에선 알뜰폰 업체들처럼 통신 3사 망을 빌려 쓰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새 사업자가 망 사용 대가로 통신 3사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상호접속료)을 낮추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최대 4000억원 자금 융자도 지원한다. 또 새 사업자가 원할 경우 현재 통신 3사가 5G서비스 주력용으로 쓰는 3.5GHz 대역의 인근 주파수(3.7GHz)를 추가로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새 사업자가 전국 인프라 구축에 수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주려는 취지”라며 “28GHz 기지국을 핫스팟 위주로 설치하면 망 구축 비용이 3000억원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앞서 2010년부터 7차례에 걸쳐 추진했던 제4 이통사 도입이 그동안 ‘높은 진입’ 기준 탓에 실패했다고 보고 이번에는 각종 맞춤형 지원으로 장벽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촉각 세우는 통신업계

과기정통부는 올 2분기 주파수 할당 계획을 공고한 뒤 4분기 중 새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제4 이통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 업체를 밝히는 건 적절치 않지만, 이미 문의를 해오는 기업들이 있다”며 “신규 사업자 진입지원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면서 잠재 사업자군이 제안하는 애로 사항을 청취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이통 시장은 최근 알뜰폰이 성장하면서 견고했던 통신 3사 중심의 구도에 변화가 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알뜰폰 점유율은 16.9%로, SK텔레콤(40.1%), KT (22.3%), LG유플러스(20.7%)를 바짝 뒤쫓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알뜰폰도 기존 통신 3사 구도를 위협하고 있는데, 제4 이통사까지 등장한다면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5G 서비스와 알뜰폰을 결합한 제4 이통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 안팎에선 네이버·카카오·쿠팡 등과 같은 IT(정보기술)·플랫폼 기업은 물론, 롯데·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이 제4 이동통신사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해당 기업들은 일단 “검토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그러나 “현 시점에서 제대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정부 움직임을 좀 더 살피면서 사업 타당성을 따져보면 입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5G용 주파수

5G 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는 주파수로, 3.5㎓와 28㎓ 대역 두 개로 구분된다. 3.5㎓ 대역은 LTE의 4~5배, 28㎓는 LTE의 20배까지 빠르다.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나 고도화된 증강현실(AR)·메타버스 서비스에는 28㎓ 대역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대역은 도달 거리가 짧고 직진성이 강해 주파수 신호가 빌딩과 같은 장애물에 쉽게 가로막히기 때문에 중계기를 대량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