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학자금 대출 스타트업 '프랭크' 창업자 찰리 제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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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의 사기극은 실리콘밸리의 ‘될 때까지 속이는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염색까지 해가면서 ‘스탠퍼드를 중퇴한 금발 미녀’이자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가 되려 했던 홈즈는 투자자 사기 혐의로 지난해 11월 11년3월 형을 선고 받았고,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때 45억달러(약 6조원)에 이르렀던 그의 자산 가치는 이제 0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홈즈 사건이 실리콘밸리 창업자와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최근 뉴욕 월스트리트는 ‘제2의 테라노스 사건’이라고 불릴 만한 소송전으로 시끄럽습니다.

홈즈에 비견되는 이 인물은 올해 30세가 된 여성 찰리 제이비스(Charlie Javice)입니다. 학자금 대출 중계라는 핀테크 사업 모델을 개척한 스타트업 ‘프랭크(Frank)’ 설립자입니다. 제이비스 사건이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입니다. 2021년 프랭크를 인수한 JP모건은 지난해 12월 델라웨어 연방 법원에 제이비스를 비롯한 프랭크 임원들이 데이터와 사업 성과를 속였다며 증권사기, 부당이득 등으로 고발했습니다. JP모건의 프랭크 인수 대금은 1억7500만달러, 한화로 2200억원이 넘습니다.

이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포천 등 유력 외신들이 촉망 받던 젊은 여성 창업자가 전세계 언론과 유력 투자자, 심지어 세계 최대 은행을 타깃으로 펼친 사기극의 전말을 추적해 앞다퉈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면면을 뜯어보면 테라노스와 프랭크 사건은 마치 쌍둥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약하면 ‘명문대 출신 젊은 여성이 혁신적인 기술(또는 사업 모델)로 전세계의 주목을 끌며 억만장자가 됐지만 알고 보니 사기였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 언론과 권력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도 닮아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직원들은 회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젊은 여성 CEO는 노련한 사업가 출신 남성 임원의 보좌를 받으며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디코드 2.0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 제이비스의 과거 인터뷰 등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21세에 창업한 와튼 스쿨 재학생

신데렐라 스토리에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제이비스 서사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제이비스의 조부모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였습니다. 그는 2021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나의 조부모는 교육만이 나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가르쳤다”면서 “이는 내가 교육 분야에 뛰어든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제이비스는 뉴욕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재학 시절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서 자원 봉사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빈곤층의 어려움을 체험했고 2010년 명문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 스쿨)에 진학한 뒤 이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2011년 2학년이 되자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사회적 기업 인턴십, 소액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 파버업(PoverUP)을 설립했습니다. 파버업은 4월에 문을 열었는데 한달 만에 전세계 50개 학교에 네트워크를 구축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 스타트업 전문 매체 패스트컴퍼니는 제이비스를 ‘올해의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제이비스가 내건 모토는 ‘학생들은 다음 세대의 물결이고, 변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사회적 기업의 운명이 그러하듯 파버업은 어느 순간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수익 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사업이 걷는 전형적인 길이었습니다.

◇’복잡한 학자금 대출 간소화’ 내걸어

/NYT 홈페이지 뉴욕타임스 2017년 12월 오피니언면에 실린 찰리 제이비스의 기고문. ‘Fafsa에 대해 가장 혼란스러운 8가지’라는 이 글은 제이비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와튼 스쿨을 비롯한 미국 대학과 대학원들은 학비가 비싼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이비스 역시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아버지 디디에는 골드만삭스에서 11년, 메릴린치에서 3년을 일하는 등 월스트리트에서만 35년을 몸담은 금융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은 이 가족에게도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기 위한 신용 평가는 수많은 서류를 요구했고 시간도 지나치게 많이 걸렸습니다. 매 학기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2013년 제이비스는 TAPD라는 회사를 세웁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신용도를 판단하는 더 나은 방법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TAPD의 목표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는 소셜매체 ‘미디엄’ 인터뷰에서 “복잡한 미국 각주의 규정과 연방 규정을 모두 준수하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면서 “나는 곧 모든 직원을 해고해야 했는데, 이는 내가 지금까지 해본 일 가운데 최악이었다”고 했습니다.

2017년 제이비스는 드디어 문제의 핵심 ‘프랭크’를 창업합니다. 프랭크(Frank)는 ‘(기분 나쁠 정도로) 솔직한’이라는 뜻입니다. 제이비스가 나중에 벌인 일을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회사명이죠. ‘Frankfafsa.com’이라는 주소의 프랭크 홈페이지에는 “최대한의 재정 지원을 보장한다” “등록금을 최소 1000달러 절약하지 못하면 환불해 준다” “월 10달러에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같은 문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랭크가 모은 초기 투자금만 1000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혁신적인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CBS 유튜브 2020년 미국 CBS 뉴욕 프로그램에 출연해 프랭크를 소개하고 있는 찰리 제이비스.

서비스가 내건 기치는 혁신적이었지만, 프랭크의 사업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프랭크에 가입하면 연방 학자금 무료 신청 사이트를 분석해 학생들에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과 대출을 확인하고, 부채 부담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개인화된 학자금 대출 포털 같은 개념이죠. 제이비스는 이를 ‘세무 회계 프로그램’에 비유했습니다. 세무 회계 프로그램에 항목을 입력하는 것처럼 질문에 답하다보면 몇 분 내에 신청이 마무리 된다는 것이죠. 신청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등록금을 선지원하고, 실제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상환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했습니다.

◇’고등 교육의 아마존’ 언론의 찬양

사업 초기에는 잡음도 있었습니다. 프랭크가 홈페이지 주소와 서비스 명으로 사용한 ‘Fafsa’는 ‘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연방 학자금 지원 무료 신청)’를 뜻하는데 이미 미국 교육부가 상표로 등록한 서비스명이었습니다. ‘정부 사이트로 오해할 수 있다’는 교육부 요구로 프랭크는 Fafsa를 사용할 수 없게 됐고, 홈페이지 주소도 넘겼습니다.

하지만 프랭크와 제이비스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현재 제이비스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앞장서는 언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12월 오피니언면에 ‘Fafsa에 대해 가장 혼란스러운 8가지’라는 제이비스의 기고를 실었는데, 그는 이 글에서 미국의 학자금 대출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매년 Fafsa 신청의 25%가 프로세스 중간에 폐기되면서 20억 달러가 집행되지 않는다는 점, 1970년대 처음 출시 이후 시스템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 부모나 보호자가 아닌 학생이 직접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 이민국과의 공유가 없어 사회 보장 번호가 없는 학생들이 신분 노출의 위험을 느낀다는 점, 부모 이외의 법적 보호자를 인정하지 않는 점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언론이 제이비스에 공감하며 그가 만든 프랭크의 비전과 제이비스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6세의 제이비스는 빌 게이츠가 대학 진학의 ‘불필요한 장애물’이라고 부르는 것(학자금 대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의 스타트업은 등록금을 절약해 수천명의 학생들을 돕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방거래위원회 경고에도 묻지마 직진

/포브스 왼쪽부터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창업자, 찰리 제이비스 프랭크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업자.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주목한 인물로 선정되면서 이름값이 높아졌다.

2019년 포브스는 제이비스를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에 선정했습니다. 제이비스를 30세 이하 전세계인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인물로 꼽은 것이죠. 뉴욕 비즈니스도 그를 ‘40세 이하 40인’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그는 드디어 해냈다”라는 평가와 함께요.

당시 제이비스는 여러 인터뷰에서 “학자금 대출 시스템을 보면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이민자들이 세운 미국과 미국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정서를 교묘하게 자극한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인들의 가장 큰 불만인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학자금 대출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건강해지는 길인 만큼, 학자금 대출 역시 대학생들이 성공하도록 먼저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자금 대출이 빚을 갚는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부채 자체를 줄이는데 목적을 둬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프랭크는 신용 평가 시스템을 선보이고 다양한 상품과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엔젤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제이비스가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에서 경고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프랭크는 기본적으로 학자금 대출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프랭크에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학생이 학교로부터 보조금을 신청하는 데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경고를 보냈습니다. 프랭크의 약관에도 독소조항이 여럿 숨어 있었습니다. 프랭크는 “무이자, 무수수료로 학자금을 현금 선지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학생이 실제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61일 이내에 선불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조항과 연결돼 있었습니다. 또 FTC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월 19.90달러의 구독 수수료를 내는 부분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프랭크는 시스템을 고치는 대신 서비스 가입시 144.95달러를 내면 대출 신청 거절에 대한 이의 신청을 도와주는 상품을 추가 출시했습니다. 물론 서류 작성만 도와주는 것일 뿐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의심스러운 스타트업 거액에 인수한 JP모건

2019년 11월 프랭크는 사업 확장을 시도합니다. 직접 교육 사업에 뛰어든 것이죠. 공인된 대학들의 수업을 프랭크의 ‘클래스 파인더(수업 검색기)’라는 페이지에서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이른바 사이버 대학 모델이었습니다. ‘상업법 기초’ ‘수퍼히어로 : 아메리칸 판타지’ 같은 수업이 투자자들에게 예시로 제공됐고 각 수업당 수강료는 500~700달러 정도였습니다.

2021년초 클래스 파인더가 실제로 론칭됐는데 곧바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프랭크는 플로리다에 캠퍼스를 가진 카이저대 수업 448개 과정, 테네시 클리블랜드에 있는 리대학의 수업 317개 과정을 제공했는데 정작 두 대학은 프랭크가 이런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심지어 리대학의 온라인 수업 과정은 248개에 불과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프랭크가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21년 9월 JP모건이 프랭크를 1억75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합니다. 전세계 어떤 기업보다 강력한 평가와 투자 시스템을 갖춘 JP모건의 선택은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포천에 따르면 이 투자의 첫 단계는 2021년 3월 시작됐습니다. 프랭크 투자자 한 사람이 JP모건의 투자 담당 임원에게 프랭크 서비스 소개자료와 유력 언론들의 제이비스 찬양 기사를 전달한 시점입니다.

◇가짜 고객 리스트 만들어 JP모건 속인 제이비스

/유튜브 찰리 제이비스는 조그마한 유튜브 방송에도 출연할 정도로 이름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사진은 창업 초기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찰리 제이비스.

메일을 전달 받은 JP모건 기업 개발 임원 레슬리 윔스 모리스가 제이비스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이비스에게 “은행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는 프랭크 인수를 주도했습니다. 윔스 모리스가 허술한 인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브로드리지 파이낸셜 솔루션스 등 대형 금융 회사에서 비즈니스 개발 전문가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입니다.

실제로 윔스 모리스는 프랭크 실사 과정에 기업 개발·제품·소비자·기술·재무·법무 등 JP모건의 다양한 인력을 총동원했습니다. 외부 대형 로펌도 참여 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가 제시한 엄청난 고객 수와 성과가 JP모건 실사팀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당시 프랭크가 모은 투자금은 2000만달러가 넘었습니다. 프랭크는 자사 웹사이트에서 재정 지원을 받은 학생은 525만명이라고 광고했고 실제 리스트의 일부도 제공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대부분 가려진 학생 명단 엑셀 리스트는 400만명이 넘었습니다. 제이비스는 이 시점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학생정보가 426만5000명분이며 웹 사이트 방문자는 누적 3500만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JP모건은 계약을 앞두고 프랭크 고객의 이름, 생년월일, 이메일, 주소 리스트를 요구했습니다. 제이비스는 고객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며 은행이 아닌 제3자 데이터 관리 공급업체 액시옴(Acxiom)에 정보를 제공해 검증을 받는데 동의합니다. JP모건의 소장에 따르면 이때 액시옴에 전달된 고객 리스트는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 교수에게 맡겨 만들어낸 가짜리스트였습니다. 인터넷 정보와 자사 보유 데이터를 이용해 컴퓨터 합성으로 가짜 리스트를 만드는데 제이비스가 지불한 돈은 1만8000달러(약 2200만원)였습니다. 액시옴은 특별한 문제를 찾지 못했고 3일 뒤 인수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이비스는 안전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프랭크의 최고성장책임자이자 제이비스의 최측근인 올리비에르 아마르는 마케팅 회사 ASL에서 450만명의 대학생 리스트를 구입했습니다. 10만5000달러에 구입한 이 리스트는 인수 이후에 전달됐고, 이들이 먼저 제공한 리스트를 나중에 ASL 데이터로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 JP모건의 주장입니다.

◇JP모건의 오판 ‘잠재 고객 생각하면 헐값’

/아이젠버그 블로그 이스라엘 벤처캐피털인 알레페의 마이클 아이젠버그(오른쪽) 파트너는 찰리 제이비스와 프랭크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JP모건은 왜 이렇게 투자를 서둘렀을까요. 이미 시장에서 프랭크와 제이비스에 대한 잡음이 나오고 있었는데 말이죠. 뉴욕타임스는 “인수대금인 1억7500만달러를 프랭크가 보유한 500만 고객으로 나누면 1인당 35달러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프랭크 고객들은 대학 교육을 이제 막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한번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이 앞으로 계속 은행을 이용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35달러는 큰 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천은 JP모건의 프랭크 인수 금액은 교육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저렴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당시 프랭크는 대학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광고했습니다. 2020년 기준 미국 대학 등록자는 1600만명 수준입니다. 그런데 학습 시장의 36%를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온라인 교육회사 체그(Chegg)의 시가 총액은 2021년 9월 당시 109억 달러였습니다. 단순히 비교해도 60~70분의 1 가격에 프랭크를 산겁니다. 포천은 “(인수가 진행됐을 당시)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의 영향으로 원격 교육이 영구적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서 “전문가 상당수는 프랭크는 사업 실적이 진짜였다면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매각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고 했습니다. 제이비스는 조작으로 회사를 빨리 팔아 치우려고 하는 상황이었고, 프랭크의 데이터를 믿고 있는 JP모건 입장에서는 헐값에 구매할 수 있는 찬스로 여겨 덥석 물었다는 겁니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JP모건은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프랭크 인수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기류가 급변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프랭크의 기존 투자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의심합니다. 프랭크의 핵심 투자자 가운데에는 자산관리 회사 겸 사모펀드인 아폴로 글로벌의 공동 창립자 마크 로완이 있었습니다. 로완은 제이비스가 졸업한 와튼 스쿨 동문이자 와튼 스쿨 자문위원회 의장이기도 합니다. 또 이스라엘 대형 벤처캐피털인 알레페의 마이클 아이젠버그도 프랭크의 열렬한 후원자였습니다. 아이젠버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난 제이비스를 19살 때부터 알았는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데 그보다 끈질긴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아폴로 글로벌이나 알레페는 JP모건 입장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큰 손입니다. 이런 부분이 프랭크에 대한 JP모건의 태도 변화와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얘기죠.

◇나중에야 알게 된 허술한 조작

/프랭크 학자금 대출 스타트업 프랭크의 홈페이지. 공짜로 빠르게 학자금 대출을 도와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JP모건이 문제를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합병이 종료되자 JP모건은 프랭크의 고객 목록 일부에 학자금 대출 마케팅 메일을 발송합니다. 40만개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수신자가 있는 이메일은 28%에 불과했습니다. 일반적인 이메일 리스트 발송 성공률이 99%라는 점을 감안하면 황당한 수치였습니다. 게다가 메일을 받은 뒤 프랭크 웹사이트를 클릭한 수신자는 단 103명이었습니다. 리스트 대부분이 가짜인 것은 물론, 그나마 실제인 것도 학자금 대출과 관련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해당 리스트의 극히 일부만 프랭크 실제 고객이고 나머지는 연구실에서 만들어졌거나, 전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케팅 회사 데이터였으니 말이죠. JP모건은 소장에서 이를 ‘재앙’이었다고 했습니다.

조사에 착수한 JP모건은 제이비스의 프랭크 이메일에서 고객 리스트를 조작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 조작이 프랭크 내부 개발자들과 공모했다는 내용, 특정인은 조작을 거부했다는 내용도 있다고 합니다.

JP모건과 외신들은 프랭크의 사업 실적에서도 이상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찬양 일색일 때는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았던 내용들이죠. 예를 들어 매년 200만명의 학생들이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상황에서 5년만에 500만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했다면 프랭크 서비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프랭크를 알거나 이용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프랭크의 고객수는 2021년초 30만명에서 2021년 9월 525만명으로 급증했는데, 실제 대학생수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숫자입니다. 프랭크와 제이비스의 사기극을 주장했던 전문가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프랭크 인수 당시 한 외부 전문가가 웹트래픽 측정 사이트에서 프랭크 사이트 방문자수를 찾아봤는데 한달간 6만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프랭크 설립 직후부터 매달 이만큼씩 고객이 찾아왔더라도 500만명은 말이 되지 않는 수치라는 겁니다. JP모건은 조사 결과 프랭크의 고객과 개인정보를 입력한 방문자를 모두 합쳐도 30만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21년 1월에서 9월 사이 늘어났다는 500만명분이 모두 가짜라는 얘기입니다.

뉴욕타임스는 “6000개 이상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돕는다는 프랭크의 주장도 미스터리”라며 “연방교육통계센터에서 연방 재정 지원을 활용할 수 있는 고등 교육 기관이 5916개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숫자를 반올림한 것은 물론 모든 학교와 거래했다는 얘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제이비스 “JP모건의 음해”

JP모건 체이스는 2021년 프랭크를 1억7500만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제이비스는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인수와 함께 제이비스는 JP모건의 학생 금융 담당 임원이 됐습니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2000만달러의 보너스도 지급받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이비스는 해고됐고, 이제는 소송으로 거액을 물어야 할 처지입니다.

소송의 천국인 미국에서 한때 성공의 끝판왕에 올랐던 야심찬 젊은 여성 사업가가 순순히 물러날 리는 없습니다. 제이비스는 초대형 로펌 퀸 에마누엘의 알렉스 스피로를 변호인으로 선임했고, 대변인 업무도 맡겼습니다. 스피로는 일론 머스크의 변호사로 유명한 거물 법조인입니다.

/AP 연합뉴스 찰리 제이비스와 JP모건의 소송에서 제이비스 변호를 맡은 알렉스 스피로. 초대형 로펌 퀸 에마누엘의 파트너 변호사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변호인을 여러차례 맡았다.

스피로를 통해 내놓은 제이비스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JP모건은 제이비스의 혁신적인 사업을 서둘러 인수했지만, 이 사업이 기존의 학생 개인 정보보호법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정적으로 거래를 취소하려 하고 있다.” JP모건이 제이비스의 사기 때문이 아니라, 프랭크가 은행 사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이비스를 사기범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연방법이 대학 및 기타 당사자가 학생 데이터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프랭크와 같은 사례에서도 데이터를 분리하고 제한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교훈 없으면 실수는 계속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존 피어폰트 모건이 세운 JP모건(JP모건 체이스)의 시가총액은 4190억달러(약 528조3500억원)에 이릅니다. 2위 뱅크오브아메리카(2910억달러)를 두 배 가까이 앞서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은행입니다. JP모건 같은 거대 은행을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대한 사기꾼을 속인 사기꾼’이라며 제이비스를 지지하는 움직임까지 있습니다.

JP모건 최고경영자(CEO)이자 월스트리트의 거물 제이미 다이먼은 지난달 13일 분기 실적 발표에서 프랭크 인수에 대해 “큰 실수였다”고 했습니다. 이후 JP모건은 프랭크 웹사이트를 폐쇄하고, 프랭크 인수 보도자료까지 지웠습니다. 다이먼은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항상 실수를 하고, 난 직원들에게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면서 “거기에는 항상 교훈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현실은 다를 겁니다. 누군가는 이 사기극을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JP모건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찾아 고치려고 애쓰겠죠.

거대한 실수는 항상 사소한 것을 지나치는 데서 시작합니다. 500만명이 고객이라는데, 거대 은행이 꾸린 초대형 실사팀에는 왜 이를 경험한 사람이 없는지 궁금해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왜 아무도 이를 검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엘리자베스 홈즈의 테라노스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피 한 방울로 24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고작 스탠퍼드 중퇴생이 개발했다는데 모두가 찬사를 보내기 바빴습니다. 두 사건 모두에서 ‘불가능한 일’이라는 냉정한 판단은 ‘혁신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기와 질투’로 치부됐습니다.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다이먼의 말은 역사가 입증해주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훈을 얻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실수는 반복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무리 투자 업계가 속고 속이는게 미덕으로 용인되는 동네라고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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