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연초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9개 사업본부를 영화·드라마, 교양·예능, 음악 콘텐츠, 미디어플랫폼, 글로벌 5개 사업본부로 재편하고, 기존 팀장-국장-사업부장-사업본부장으로 이어지는 체계에서 국장 보직을 없앴다. CJ ENM이 큰 폭의 조직 개편에 나선 것은 실적 악화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7922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4.9% 증가했으나 영업이익(1374억원)은 전년 대비 53.7% 감소하고 순손실 1657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CJ ENM의 위기는 하이브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하이브는 지난해 매출이 1조7780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5% 상승한 2377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K팝과 K드라마가 승승장구하는 시기에 한국 최대 엔터·미디어 회사인 CJ ENM 실적은 오히려 나빠졌다.

푸드빌과 올리브영을 구조 조정으로 되살린 뒤 지난해 말 CJ ENM에 투입된 구창근 대표가 결국 칼을 뺀 것이다. 구 대표는 22일 CJ ENM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을 열어 “CJ ENM은 방송광고 시장 정체와 (OTT 서비스인) 티빙 플랫폼의 경쟁력 열위, IP(지식재산)를 보유하지 않고 외부에 판매한 전략적 실책 탓에 지속 가능 성장이 어려워지고 글로벌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책임 경영,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조직 내 변화는 생존을 위한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CJ ENM 실적

◇원가는 글로벌인데 주요 매출이 내수

업계 전문가들이 꼽는 CJ ENM의 문제는 ‘제작 원가는 글로벌 수준으로 높은데 대부분의 매출은 내수 시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해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한국 콘텐츠를 활발하게 제작하면서 콘텐츠 평균 제작비는 크게 올랐지만 국내 방송 광고 시장 단가나 시청자 수는 그와 비례해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슈룹’ ‘환혼’ ‘술꾼도시여자들2′ 같은 드라마의 흥행으로 CJ ENM 미디어 부문의 지난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49% 증가한 7287억원을 기록하고도 영업수지 면에선 적자가 492억원으로 되레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부문 역시 평균 제작비는 상승했는데 한국 영화 수요는 코로나 기간 이전 수준으로 아직 회복이 안 되고 있다. CJ ENM 영화 부문의 연말 기대작이었던 ‘영웅’은 21일 현재 누적 관객이 324만명으로 손익분기점인 350만명을 넘지 못했다. 손익분기점이 335만명인 유령도 누적 관객이 66만명에 그치며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CJ ENM 영화의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1.6%였다. 이에 CJ ENM은 일년에 12편 이상 내놓던 영화를 6~8편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디즈니도, 넷플릭스도 구조 조정 들어가

CJ ENM가 조직 개편을 통한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은 글로벌 엔터 산업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지난 8일 실적 발표와 함께 7000명의 인원 감축을 예고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면서 창의성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작업이 스트리밍 비즈니스의 지속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넷플릭스도 지난해 6월 직원 3300명을 해고한 뒤 “매출 성장은 정체됐지만 비용은 증가함에 따라 구조 조정을 결정했다”고 했다. 국내외 콘텐츠 제작·유통 회사들이 제작비를 쏟아붓는 ‘치킨게임’을 벌이다가 비용은 늘고 수익은 줄자 비상 경영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에선 지난해 거의 1조원을 들여 인수한 해외 콘텐츠 제작사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도 실적 악화의 요인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CJ ENM은 “피프스시즌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콘텐츠를 내놓고 티빙도 올해 가입자 500만명 목표를 달성하면 향후 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