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로이터 연합뉴스

봄이 되면 냉각기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던 가상화폐 시장이 여전히 추락하고 있다. 8일(현지시각) 가상화폐 전문 은행인 미국 실버게이트캐피털이 청산을 선언했다. 재정난 때문이다.

실버게이트는 뉴욕의 시그니처 은행과 함께 가상화폐 전문 양대 은행으로 꼽힌다. 2013년부터 가상화폐를 본격적으로 다뤘고, 가상자산 실시간 교환 서비스인 SEN(실버게이트 익스체인지 네트워크)을 기반으로 확장했다. 2019년 11월엔 뉴욕증시에 상장하기도 했다.

실버게이트의 총자산 규모는 110억달러(14조5000억원)다. 1위인 시그니처 은행(1140억달러)의 10분의 1수준이지만 양대 가상화폐 전문 은행 중 1곳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가상화폐 시장은 흔들렸다. 이날 실버게이트 주가는 장 마감 후 시간외거래에서 44% 폭락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미 서부기준 오후 5시 현재 2만1729달러로 24시간 전보다 2.4% 하락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2만3000달러 수준까지 회복했는데 다시 주저앉았다.

실버게이트는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가상화폐 업계, 규제 환경에 비춰 은행 영업을 질서있게 정리하고, 자발적으로 청산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실버게이트는 은행 영업을 중단하더라도 고객들의 예금은 정상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상화폐 관련 비즈니스들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정리할지는 불확실하다고 CNBC는 보도했다.

◇FTX 붕괴에 타격 받아

실버게이트의 청산설은 지난주부터 흘러나왔다. 실버게이트는 상장기업의 의무사항인 연례 사업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못했고, 가상화폐 업계에선 실버게이트에 재정적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작년 파산 보호를 신청한 FTX가 실버게이트의 주요 고객이자 후원자였는데, FTX 붕괴의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로이터는 “실버게이트의 끔찍한 결과는 FTX의 몰락이 가상자산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고 했다. 실버게이트는 투자자들이 잇따라 예금을 인출하면서 작년 4분기 1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버게이트 관련 잡음이 흘러나오자 그동안 실버게이트를 이용했던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크립토닷컴, 제미니 같은 업체들은 실버게이트에 맡긴 돈을 인출하고 거래를 중단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주요 고객들이 떠나면서 실버게이트는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버게이트 폐업으로 회복을 기대했던 가상화폐 시장은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다. 일각에선 실버게이트가 유지했던 실시간 가상화폐 교환 서비스(SEN)가 문을 닫으며 업계 전반에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실버게이트의 몰락은 광범위한 가상자산 산업의 침체와 궤를 같이 한다”며 “규제기관이 단속을 강화하고, 투자자들이 투자 위험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가상화폐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