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일본은 세계 첫 이족 보행 로봇을 선보였다. 자동차 기업 혼다가 개발한 ‘아시모’가 무대에서 두 다리로 걷는 모습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개발에만 2000억원 넘게 들어간 아시모는 얼마 안 가 사업이 중단됐다. 사람처럼 걷는 것 외에는 쓸모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시모의 후예들’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성능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고 공중제비를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구동이 자연스러워졌다. 원격 통신·자율주행·AI(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 테크가 적용되면서 심해나 화산, 원전 사고 현장,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에 투입되고 있다. 로봇과의 공존이 중요한 ‘위드 로봇 시대’가 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로봇을 미래 산업으로 낙점하고 발 빠르게 키우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720억달러(약 95조5000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로봇 시장은 2032년에는 2832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극한 환경 로봇 개발 경쟁
주요 기업, 대학들은 로봇을 활용해 사람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환경에 따라 로봇의 크기와 기능도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일본 쓰바메인더스트리스는 지난달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에서 사람이 들어가 조종하는 탑승 로봇 ‘아책스’(Archax)를 공개했다. 육중한 몸집(높이 4.5m, 무게 3.5t)에, 사람이 탑승해 양팔을 조종할 수 있어 ‘현실판 마징가Z’라 불린다. 공사 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들거나 사고 현장 수습에 활용될 예정이다. 양발에 바퀴가 달려 있어 시속 10㎞로 달릴 수도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화성 이주 사업에 투입할 로봇 ‘발키리’를 공개했다. 성인 남성 키(189㎝) 정도에 수많은 관절이 달려 있어 사람과 같은 움직임을 구현했다. 머리에 첨단 센서, 카메라가 달려 있어 지구에서 원격조종할 수 있다. 사람이 달이나 화성에 직접 가지 않아도 현지에서 우주기지를 세우거나 자원을 채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 스탠퍼드대는 사람 대신 심해에서 탐사 활동을 할 수 있는 로봇 ‘오션원K’를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무게만큼의 수압이 가해지는 해저 6000m까지 내려가 과학 연구, 광물 채취를 할 수 있다. 한국 KAIST는 지난 7월 사람처럼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는 파일럿 로봇 ‘파이봇’을 선보였다. KAIST는 “생성형 AI 기술로 항공기 매뉴얼과 비상 대응 절차 자료를 분석해 사람보다 빠르게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은 ‘바이오’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머리카락 굵기 1000분의 1도 안 되는 초소형 로봇을 사람 몸속에 넣어 질병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 유럽에서는 사람 몸속에서 고장 난 유전자(DNA)를 수선하거나 세포를 조작할 수 있는 나노(nm·10억분의 1m) 크기의 로봇 원천 기술 개발을 마친 상태다. 중국 국가나노과학기술 혁신연구원은 지난해 7월 “사람 정맥을 통해 들어가 특정 종양에 약물을 주입, 종양을 죽이는 나노 로봇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화학 의약품인 항암제는 사람 몸에서 종양 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죽이는 반면 로봇은 암세포에만 정확하게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상용화되면 부작용이 없으면서 현재 개발된 바이오 신약을 뛰어넘는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
로봇 업계의 새 화두는 ‘AI’다. 그동안 로봇의 손을 정교하게 만들거나, 큰 힘을 낼 수 있는 ‘하드웨어’ 개량에 집중했다면, 사람처럼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는 ‘머리’를 갖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로봇에 개별적으로 두뇌를 장착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클라우드(가상 서버)에 거대한 두뇌를 두고 통신을 통해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산업 현장은 물론 국방용으로도 개발이 활발하다. 미국 로봇 스타트업 앱트로닉은 지난달 170㎝ 높이의 휴머노이드 ‘아폴로’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