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지난 23일(현지 시각) 인도 구자라트주에서 반도체 패키징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미국 방문에서 마이크론과 협약한 지 3개월 만에 공장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27억5000만 달러(약 3조7300억 원)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다. 공장 규모는 약 37만6000㎡. 건설은 1년간 진행돼 첫 반도체는 내년 12월 출시될 예정이다. 인도 현지 매체들은 “인도가 글로벌 반도체 허브로 자리 매김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역사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인도가 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한 야심을 펼치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착륙선을 달 남극에 보내는 데 성공한 인도가 또 다른 첨단 산업인 반도체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기술전쟁의 틈을 파고들려 한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인도가 중국을 대체하는 국가가 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강국 위해 100억 달러 보조금 내걸어
마이크론의 공장이 들어서는 구자라트는 ‘반도체 도시’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구자르트주는 폭스콘과도 반도체 공장 건립을 놓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라트주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도의 ‘실리콘밸리’ 벵갈루루에는 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모여 있다. 반도체 생산거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도 반도체 강국 계획 뒤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 인도 정부는 100억 달러의 보조금을 내걸었다. 인도에 진출할 외국 반도체 기업들은 50~70%의 지원을 받는다. 반도체 설계 회사 AMD는 앞으로 5년간 인도에 약 4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에 진출하려는 인도 기업 베단타는2년 반 안에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아쉬위니 바이쉬나우 인도 전자정보기술부 장관 집무실에 걸려 있는 12인치 반도체 웨이퍼는 인도의 반도체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모디 총리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난 7월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는 모든 것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획기적인 해”라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만으로 모디 꿈 이룰 수 있을까
인도는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5%를 차지한다. 스마트폰부터 자율주행에 이르기까지 최근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도의 수요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인도는 대부분의 반도체를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인도 반도체 산업은 인텔,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센터가 있는 등 반도체 설계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그에 반해 제조 설비나 관련 인프라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파운드리나 패키징 등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저문매체 CNBC는 “인도에게 매력적인 분야 중 하나는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라며 “상대적으로 저숙련 노동력이 필요하고 인도의 대규모 자본 투자로 가능하다”라고 했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것도 인도에게 이점이다.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면서 인도가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조 분야에서 인도는 중국의 대체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애플은 앞으로 5년 내 인도 현지 생산 규모를 지금의 5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는 인도의 야심에도 한국과 대만, 미국 등 선진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인도는 아직까지 제대로 반도체를 생산해본 경험이 없다. 그리고 반도체 생산을 위한 전문 엔지니어와 장비도 사실상 없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는 정부의 지원과 수십억 달러의 자본 투자를 받았지만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는 데 수십년이 걸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