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스타트업 투자 펀드 삼성넥스트는 지난 8월 이스라엘의 오픈AI로 불리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AI21 랩스에 투자를 단행했다. 2017년 창업해 최근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에 오른 이 회사는 거대 언어 모델(LLM) 쥐라식2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같은 달 간단한 문구를 입력해 3D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생성하는 미국 AI 스타트업 이레버런트 랩스에도 투자했다. 삼성넥스트는 “최근 생성형 AI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비디오 생성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면서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게임, 광고에 이르기까지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되고 이 기술이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부터 TV까지 미칠 잠재적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
글로벌 벤처 업계가 혹한기를 맞은 가운데서도 삼성과 LG, SK 등 주요 국내 대기업들이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붐이었던 1~2년 전에 비해 투자 건수와 액수는 줄였지만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신사업 분야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 주요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시장 거품이 걷힌 지금이야말로 탄탄한 스타트업을 골라내 기업의 미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적기”라며 “기업들이 신중하게 투자에 나서고 있는 만큼 각 기업이 어떤 분야에 주목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대기업 투자도 AI로 몰린다
삼성전자는 올해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넥스트는 올해 8월까지 총 34개사 1100만달러(약 147억원)를 투자했다. 지난 2021년 89사(2800만달러), 2022년 94사(1900만달러)에 비해 전체 투자 액수는 크게 줄었지만 AI 투자는 늘었다. 삼성에 따르면 올해 투자 분야는 AI가 13곳(38%)으로 가장 많았고 디지털 헬스(8곳), 인프라(4곳), 블록체인(3곳) 순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블록체인과 헬스 분야에 집중해 투자해왔지만 올해 AI 기업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확 늘렸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들도 잇따라 AI 투자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AI 챗봇 이루다로 알려진 국내 스타트업 ‘스캐터랩’에 150억원에 달하는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8월에는 미국의 AI 혁신 기업 앤스로픽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LG이노텍,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등 LG 계열사가 출자해 만든 LG그룹 벤처 캐피털 LG테크놀로지벤처스도 올해 앤스로픽을 비롯해 AI 기반 첨단 스마트 물류 설루션 기업 벤티 테크놀로지, AI 기반 웨어러블 장치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휴메인 등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LG는 디지털 헬스, GS는 폐배터리
대기업들은 자사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TV 점유율 2위의 LG전자는 TV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찍고 관련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TV에 헬스케어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디지털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8월 공시된 LG전자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 4월 미국 뇌 질환 진단 및 치료 스타트업 엘비스에 6억7000만원, 원격 재활 운동 스타트업 에버엑스에 5억원을 투자했다. LG전자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투자 펀드 LG노바가 올해 투자를 진행한 스타트업 9곳 중 디지털 헬스 분야가 4곳이다.
GS그룹은 폐배터리 활용을 미래 먹거리로 꼽고 있다. GS에너지는 올해 초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벌이는 이브이씨씨에 43억원을 투자했다. GS그룹의 국내 벤처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GS벤처스는 클로렐라를 활용해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회수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 그린미네랄에 투자했다. GS그룹은 최근 1년 투자 분야 중 배터리나 탈탄소 기술과 관련 있는 기후 테크 영역의 스타트업이 총 49%로 가장 많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8월 AI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에 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 최적화한 반도체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