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 시각) 메릭 갈랜드 미 법무장관이 애플을 향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히고 있다./AFP연합

‘혁신의 대명사’였던 애플이 20년 넘게 구축해온 생태계가 흔들리게 됐다. 유럽연합(EU)에서 앱스토어 시장 독점 관행이 철퇴를 맞은데 이어, 미국 법무부가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는 생태계의 폐쇄성 자체를 문제 삼아 소송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테크 업계에선 “인공지능(AI) 혁신에 다른 빅테크 대비 크게 뒤처지는 가운데, 기존에 쌓아 올렸던 유산(legecy)도 무너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연이은 악재에 21일(현지 시각) 미장에서 애플의 주가는 전날 대비 4.09% 폭락한 171.37달러로 마감했다.

이날 미 법무부는 16개 주 법무장관과 함께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가 구글의 검색과 광고 시장 독점을 겨냥한 대형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번 빅테크의 악습을 겨냥하고 나선 것이다.

법무부는 5년 간의 조사 끝에 애플이 경쟁사들의 서비스가 아이폰·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와 통합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시장 경쟁을 저해시키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을 인상시켰다고 주장했다.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애플이 오늘날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술·서비스면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불법적인 배타적 행위 때문”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애플의 ‘성공 비결’ 정조준

애플 로고./EPA 연합뉴스

이 같은 법무부의 판단은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 근간을 부정하는 것으로, 애플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애플은 iOS라는 자체 운영 체제(OS)를 운영하며, 의도적으로 타사와 호환이 되지 않는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같은 애플 기기 끼리는 모든 서비스가 물 흐르듯 호환되고 연결되지만, 경쟁 OS인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의 모바일 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기반의 PC 등과는 사실상 연결성이 전무하게 설계한 것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애플 기기를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한 고객은 애플의 생태계 안에 갇히게 되고, 타사 제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폐쇄적인 환경을 구축하며 애플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상대로 ‘갑’이 되기도 했다. 아이폰·맥에서 사용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유통할 수 있게 하며 거액의 수수료를 통행료처럼 받는 관행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테크 업계에선 이 같은 폐쇄적인 애플의 생태계를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walled garden)’으로 부르고, 이는 애플을 지금의 위치로 성장하게 한 가장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꼽혀왔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용자를 묶어두기 위해 호환성을 줄이고 사용자가 안드로이드 등 타사 제품을 사용하기 어렵도록 한 점, 자체 ‘지갑’외 다른 경쟁사의 혁신적인 디지털 지갑 서비스를 애플 기기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점 등을 하나씩 지적하며 애플의 생태계가 반독점 행위라고 주장했다.

사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애플은 즉시 반발했다. 애플 대변인은 “이번 제소는 애플의 정체성은 물론,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애플 제품을 차별화하는 원칙을 위협한다”며 “소송이 목적을 달성할 경우, 사람들이 애플로부터 기대하는 기술을 창조하는 능력이 훼손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애플, 유럽 DMA 첫 조사 대상으로

미 정부의 소송에 앞서 애플은 이미 빅테크의 반독점 관행에 강력한 규제안을 시행한 유럽에서 자사 앱스토어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폐쇄적 생태계가 기술 혁신과 데이터 보안 등에 유리하다고 일관적으로 주장해온 애플 입장에서는 커다란 굴욕인 셈이다. 이 처럼 전례 없는 앱스토어 개방 정책을 내놓고도 애플은 유럽 시장에서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시장 경쟁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물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럽에서의 애플의 수난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1일 블룸버그 통신은 EU집행위원회가 조만간 애플과 구글에 대한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조사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애플과 구글이 각각의 앱장터에서 개발자에게 새로 부과하기 시작한 수수료 정책이 DMA 규정을 준수했는지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EU당국은 오는 11월까지 조사를 마치겠다는 입장으로, 조사 결과 DMA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애플은 법에 따라 글로벌 매출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