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면서,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의 증거’를 구축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해졌습니다.”
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월드코인: 새로운 세상(New World)’ 행사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알렉스 블라니아 툴스포휴머니티(TFH·월드코인 운영사)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할 시점에 봉착했다. 선거 방식, 금융 서비스 사용 방식 등을 모두 새롭게 생각해야하며, 무엇보다 이용자가 확실히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AI의 발전으로 인간을 흉내내는 ‘딥페이크’가 범람하는 가운데, 자사 기술 이용자가 AI가 아닌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글로벌 인증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TFH의 공동창업자인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역사상 가장 큰 기술 혁명의 한 가운데서, 월드코인이 중요한 기술적 인프라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드코인은 올트먼 CEO가 AI시대의 ‘인간 증명’과 기본 소득 보장을 위해 구상한 가상화폐다. TFH는 지난해 7월부터 글로벌 각국에서 홍채 인식 기기 ‘오브’를 배치하고, 홍채 정보를 수집해 이를 통해 개인을 식별하는 특별한 ‘월드ID’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생성된 ‘월드ID’는 해당 이용자가 AI인지 인간인지 구분하는 결정적 단서로 취급된다. 다만 홍채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다는 비판도 잇따랐고, 최근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TFH가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홍채 정보를 수집해 해외로 이전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11억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올트먼, “규모가 곧 품질…모두가 월드ID 있는 세상 궁금”
잇따른 비판과 제재 중에서도 TFH는 이날 행사에서 대대적인 사업 확장을 해나가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올트먼 CEO는 “AI를 확장하며 ‘규모’가 곧 ‘품질’이 되는 경험을 숱하게 했다”며 “의심스러우면 일단 규모를 키워보라는 농담도 자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인구의 99%가 월드코인에 가입하지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가입한 인프라를 구축해 세계적으로 규모를 확장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이를 위해 TFH는 우선 논란이 됐던 홍채 정보가 없어도, NFC(근거리 무선 통신)를 지원하는 국가 발급 여권 정보만으로 월드ID를 생성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TFH는 글로벌 41개국에 보급된 3823개의 오브로 홍채를 직접 인식시켜야만 월드ID를 생성할 수 있어 가입자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미국을 비롯해 바이오 정보 보호를 이유로 오브의 도입을 막은 국가들도 있었다. 향후 근처에 오브가 없거나, 오브의 도입이 원천적으로 막힌 국가에서도 월드ID 가입을 할 수 있게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월드ID를 생성한 수는 이날 기준 총 696만개에 달한다.
그렇다고 TFH가 홍채 인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월드코인이 특히 인기인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선 아예 현지 1위 배달앱 ‘라피(Rappi)’와 손을 잡고 오브를 집으로 배송해 가입하게 하는 방식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TFH가 오브를 동네 곳곳에 설치하는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입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치킨을 배달시키듯 오브를 배달시켜 집에서 빠르게 가입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TFH는 이날 현장 50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오브를 하나씩 선물하기도 했다. TFH 측은 “오브를 아예 구매해서 소유할 수도 있고, 일회성으로 렌탈할 수도 있다”고 했다. TFH는 이날 홍채 수집 속도를 향상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젯슨’ 칩샛을 탑재하고, 수집 속도를 3배 향상한 신형 오브를 공개하기도 했다.
◇TFH, “딥페이크 우리가 잡는다”
개인정보 수집 등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TFH는 AI로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자사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볼라니아 CEO는 “요즘 금융권에선 갑자기 회사 CEO, CFO가 줌 미팅을 하자는 초대장을 보내오는 일이 일어난다”며 “실제 CEO, CFO의 목소리와 얼굴로 당장 돈을 이체하라는 명령을 직원에게 내리는 딥페이크 사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TFH는 ‘월드ID 딥페이스’라는 신기능을 베타로 출시할 것”이라며 “화상회의에서 사용자가 보고 있는 사람이 실제 인간인지,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TFH에 따르면 이 기능은 줌·구글미트·MS 팀스 등 다양한 화상회의 도구에 모두 적용해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개인정보 수집 문제에 대해 TFH측은 강력한 부인을 하기도 했다. 이날 기조연설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블라니아 CEO는 “최근 한국에서 과징금을 받기도 했는데, 각국 정부의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개인정보를 보관하지 않는다, 이는 크나큰 오해”라고 대답했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인 만큼, 홍채 정보가 완전 익명으로 수집된 후 분산 저장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홍채정보를 진정 ‘소유’하지는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어 그는 “우리가 수집한 정보는 이 정보가 ‘특별(unique)’한지 여부만을 증명해주는데 쓰이고, 이외의 모든것에 대해 알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TFH측은 “한국에서 과징금을 낸 것은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지적을 동의해서가 아니라, 수집 과정에 안내문은 한국어로 제공하지 않은 점 등 서비스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