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수장인 전영현 DS(디바이스설루션) 부문장(부회장)이 반도체 부문별로 임원들을 소집해 연쇄 토론회를 시작했다. 지난 5월 취임 후 전 부회장이 임원 대상으로 공식 토론회를 여는 건 처음이다. 사업 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연말 인사를 앞두고 인적 쇄신과 조직 문화 개편의 방향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전 부회장은 지난 1일 오후 메모리 사업부 임원들을 소집해 경쟁력 회복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메모리 사업부를 시작으로 시스템LSI(반도체 설계) 사업부,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부, 반도체 연구소(신기술), 스태프 조직(사업 지원) 등 다른 부문 임원과도 이번 주 중 차례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제일 처음 시작한 메모리 사업부 토론회에서 전 부회장과 임원들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기술력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집중 토론했다. 이 자리에서 전 부회장은 “메모리 부문에서 선두 회복이 최우선”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에서 여전히 세계 1위 기업이지만, HBM을 비롯한 차세대 제품에선 경쟁사보다 오히려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가 2010년대 후반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메모리를 등한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메모리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사인 TSMC와 손을 잡는 전략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가진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고객사들과 맞춤형 HBM을 논의하고 있으며 제조와 관련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트너 선정은 고객 요구를 우선으로 내외부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고대역폭메모리(HBM)인 6세대 HBM4부터는 TSMC와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삼성전자 기업 문화 쇄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직급·직책과 무관하게 기술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최근 관료적으로 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이번 임원 토론회에서 각 사업부의 문제점과 현 상황을 솔직하게 보고하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은 지난 8월 사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낸 메시지에서도 삼성전자 반도체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소통 부재를 꼽았다. 당시 그는 “문제를 숨기거나 회피하고 희망치와 의지만 반영된 비현실적인 계획을 보고하는 문화가 커졌다”며 “직급과 직책에 관계없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인정하고 도전할 것은 도전해야 한다. 투명하게 드러내서 소통하는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 문화를 재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쇄 토론회를 시작으로 전영현표 인사 및 조직 개편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르면 이달 말로 예상되는 인사를 통해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과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현 사장단의 이동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들은 각 사업부장을 맡은 지 3~4년 정도 된다.
전방위적 조직 개편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부회장은 취임 직후 HBM 개발팀을 신설하며 경쟁사에 다소 뒤처져 있다고 평가받는 AI 메모리 반도체를 살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연말 있을 조직 개편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래 기술력 연구를 하는 반도체 연구소 또한 내부의 체질 개선과 방향성 개편이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