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질환,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심할 경우 머리카락이 주뼛 설 만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삶의 만족도와 직결되는 것. 바로 ‘시린 이’와 충치 같은 치아 질환이다. 손상된 부분을 메우거나 인공 치아를 심는 등의 해법은 있지만, 자연 치아를 살려내는 근본적 치료법은 없다. 간단할 것 같지만, 전 세계 치과의사들이 매달려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 국내에서 치아 내 세포(상아질)를 이용해 치아 질환을 치료하는 법이 시도되고 있다. 박주철(60) 서울대 치대 교수 겸 하이센스바이오 대표가 주인공이다. 세계적으로 상아질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들은 1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상아질의 재생을 이용해 시린 이를 연구자는 박 대표가 유일하다. 지난 22일 만난 박 대표는 “손상되거나 나이가 들어서 일하지 못하는 세포를 다시 일하게 하는 원리로 치아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며 “2028년쯤 우선 ‘시린 이’ 치료제를 내놓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난치 질환 연구한 의사과학자
박 대표는 치과 분야 의사과학자다. 조선대 치대를 졸업한 뒤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되는 대신 기초 연구에 뛰어들었다. 박 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희열을 느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 동기 104명 중 기초과학 연구자의 길을 택한 건 박 대표 혼자다. 대학원 시절에는 치과 전공과 관계없이 인체의 뼈와 연골을 연구했다. 박 대표는 “2000년대 초 일본과 미국 유학 시절 당시 한국과 두 나라의 학문적 수준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경쟁력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뼈·연골 연구를 치과 영역에 접목하는 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상아질 연구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 상아질 분야를 개척한 연구자로 꼽힌다. 상아질은 치아의 대부분을 이루는 조직으로, 단단한 치아 겉면인 법랑질 아래에 있다. 법랑질이 깨지거나 닳아 상아질이 노출되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상아질은 신경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두 번의 실패 끝에 상아질을 재생할 수 있는 단백질 조각을 찾았다”고 했다. 치료제 상용화를 위해 2016년 스타트업 하이센스바이오를 창업했다. 그는 “치아는 삶의 질에 아주 중요한 만큼, 치아 질환 치료는 암 치료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웃었다.
상아질 재생은 하이센스바이오의 핵심 기술이다. 개발 중인 치료제의 원리는 상아질을 자극해 재생시키고, 신경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막는다. 이를 이용해 가장 먼저 치료법 개발에 도전한 것이 ‘시린 이’다. 찬물을 마시기만 해도 찌릿한 고통을 느끼는 ‘시린 이’는 치아의 가장 겉 부분이 손상될 때 내부의 신경이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이센스바이오는 상아질을 재생해 손상된 부분을 다시 덮는 치료법을 개발 중이다. 최근 국내에서 171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 2상을 완료했다. 현재 미국에서도 임상을 진행 중이다. 내년 국내 임상 3상을 거쳐 2028년 치료제를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충치·잇몸 치료제도 개발 중
하이센스바이오는 시린 이 외에 여러 치과 질환 치료제 개발도 도전하고 있다. 충치와 치주 질환(잇몸병) 치료제다. 충치도 세균에 의해 치아 겉면이 손상되면서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일으킨다. 가시적 성과가 조금씩 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머크(MSD)에 동물 치주 질환 치료제를 기술이전 했다. 하이센스바이오와 오리온이 합작해 만든 회사 오리온바이오로직스는 시린 이 치료제 성분을 섞은 치약을 동남아에 출시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장기적으로 세포를 재생하는 원리를 치아 세포 외에도 피부, 눈, 관절에 적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에 치아가 불편한 노인들이 집에서도 편하게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박 대표의 목표다. 병원에서 치료제를 처방받아 집에서 가글로 치료하는 식이다. 특히 치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박 대표는 “지금 한국의 의치대 학생들의 최종 목표가 개업에 편중된 것 같다”며 “순수 기초과학으로 돈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산업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