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카카오가 야후 재팬과 손잡고 현지법인 카카오재팬을 설립했다. 한국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일본에서도 성공시키겠다는 출사표였다. 하지만 카카오톡의 일본 진출은 네이버의 메신저 앱 ‘라인(LINE)’에 밀려 3년 후 사업을 접었다. 당시 카카오재팬 대표는 동료 5명과 현지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는 “카카오 일본 진출은 실패했지만, 함께했던 최고의 동료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다시 도전했다”고 했다. 그가 지금은 ‘제2의 라인’이라고 평가받는 일정 공유 캘린더 앱을 개발한 박차진(56) 타임트리 대표다. 타임트리는 일본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2900만명의 일본인이 사용하는 앱이 됐다.
◇틈새 개척해 일본의 국민 앱으로 성장
박 대표는 지난 15일 본지와 화상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창업 아이템과 목표가 뚜렷했다”고 말했다. 당시 새 사업을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스마트폰 첫 번째 화면에 들어갈 서비스’, ‘날마다 사용하는 서비스’, ‘누군가와 같이 쓰는 서비스’를 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부합한 앱이 가족이나 친구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달력 앱’이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2015년 타임트리가 출시된 후 이용자는 매월 빠짐없이 늘었다. 현재 총 누적 가입자 수는 6200만명이고, 이 가운데 일본인이 2900만명으로 가장 많다. 박 대표는 “맞벌이 부부 같은 가족 단위 이용자가 대다수”라며 “타임트리 이전에도 달력 앱은 있었지만, 혼자만 볼 수 있는 개인용이 대부분이었고 일정 공유 기능이 있다 해도 업무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전달 수준에 그쳤다”고 했다.
타임트리는 일정을 입력하면 함께 그룹으로 묶인 다른 사람이 실시간으로 확인 및 수정할 수 있고, 의견도 나눌 수 있다. 달력에 그룹 커뮤니케이션을 접목한 서비스가 일본에서 가족 중심의 새 시장을 개척하며 글로벌 앱으로 성장한 것이다. 박 대표는 “전화 걸던 행위(calling)가 이메일 전송(mailing)으로 확장된 것처럼 이제는 포스팅(Posting)과 메시징(Messaging)을 거쳐 ‘스케줄링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트리의 이용자 일정은 누적 100억건에 달한다. 타임트리는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5억2000만엔(약 142억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매년 거의 두 배씩 성장했다. 박 대표는 “일정 데이터는 확정된 미래를 뜻한다는 점에서 포털의 검색어 데이터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며 “우리는 이런 일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타깃 광고를 판매한다”고 했다. 예컨대 골프 약속을 앞둔 사람에게 골프용품 관련 광고를 노출하고, 건강검진 일정을 앞둔 사람에겐 영양제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앱의 공유 캘린더에 노출되는 날짜를 판매하기도 한다. 신작 게임 출시일을 이용자 캘린더에 노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요즘은 기업들이 아예 타임트리용 캘린더를 만들어 제품 출시일이나 행사 일정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규모 인원이 공유 가능한 ‘공개 캘린더’ 쪽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니가타 시(市) 정부는 최근 타임트리를 지자체 행사 정보를 볼 수 있는 공식 캘린더로 도입하기도 했다.
◇글로벌 이용자 6200만명...한국으로 역진출
이미 미국과 독일, 대만 등지에서 각각 수백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타임트리는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수년 내 수억 명이 쓰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 대표는 “올해는 개인 일정 데이터에 기반해 다음 계획을 제안하는 ‘캘린더 GPT’ 같은 일정 전문 AI 에이전트(비서)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며 “인류 전체의 일정 관리 앱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타임트리는 글로벌 진출의 전진 기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올 1월 첫 해외 거점으로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박 대표는 “한국 이용자 규모는 현재 300만명 정도지만, 연인 이용자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특히 까다로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앞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