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일본 도쿄의 ‘라인프렌즈 스퀘어 시부야’ 건물 입구가 수십 명의 20~30대 젊은이로 붐볐다. 지난 7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이 건물에서 열리는 한국 인기 웹툰 ‘입학용병’ 관련 팝업 스토어(이벤트 매장)를 찾은 팬들이다. 네이버웹툰의 일본 웹툰 플랫폼 ‘라인망가’에서 연재 중인 이 작품은 일본에서 6억회 이상의 누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연 거래액도 10억엔(약 95억원)에 달한다. 주인공의 학생증 상품(굿즈)을 산 시모노 미사(23)씨는 “다테와키 소마(주인공)가 BTS나 한류 드라마 주인공보다 멋지다”고 말했다. 팝업 스토어 관계자는 “지금 추세면 1만명 정도 몰릴 것 같다”며 “뉴진스 같은 아이돌 팝업 스토어의 인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일본 앱 매출 1·2위가 K웹툰
한국 웹툰이 ‘만화 종주국’ 일본 시장을 잠식하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만화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국가로, 시장 규모가 한국 만화(웹툰 포함) 시장의 3배에 이른다. 일본 시장의 최선두에 있는 한국 만화 플랫폼이 네이버웹툰 일본 계열사(라인디지털프론티어)의 ‘라인망가’와 카카오픽코마의 ‘픽코마’다. 일본 경제 전문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한국의 세로 읽기 방식 ‘웹툰’이 아시아에서 급성장하면서 일본은 쫓는 입장이 됐다”며 “일본 만화의 아시아권 경쟁력 유지가 불안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모바일 앱 분석 업체 ‘데이터닷에이아이’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게임을 제외한 일본 내 매출 1위 앱은 라인망가, 2위는 픽코마다. 한국 웹툰 플랫폼이 일본에서 틱톡(3위), 유튜브(4위)보다 앞선 것이다. 라인망가와 픽코마의 누적 다운로드 건수를 합치면 작년 기준 9500만건에 달한다. 일본 대학생 아미(21)씨는 “강의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서로 라인망가 작품을 묻는다”며 “한국 웹툰 앱이 없는 친구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 웹툰 플랫폼이 일본에서 성공한 비결 가운데 하나는 시장 진입 타이밍이다. 라인디지털프론티어는 2013년, 카카오픽코마는 2016년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일본은 종이 출판 만화가 여전히 강세였고, 디지털 만화는 기존 만화책을 스캔한 수준에 그쳤다. 한국의 웹툰 플랫폼들은 아날로그 중심이던 일본 시장에 세로 읽기 방식과 전면 색채 만화, 권(卷) 대신에 화 단위로 작게 쪼갠 연재를 도입했다. 스마트폰에 적합한 새 방식을 내세운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터지면서 한국 웹툰 플랫폼의 시장점유율은 급속도로 올라갔다. 일본 전국출판협회·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디지털 만화 매출액은 코로나 직전인 2019년 2593억엔(약 2조4000억원)에서 2023년 4830억엔으로 급증했다. 일본 전체 만화 시장(6837억엔)의 70%에 육박할 정도로 커진 것이다. 업계에선 일본 전체 만화 시장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을 10~15% 정도로 추산한다.
◇日 애니메이션 시장도 노려
한국 웹툰은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영역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작년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제작된 네이버웹툰은 ‘신의 탑’ ‘선배는 남자아이’ ‘이두나!’ 등 12편에 이른다. 라인망가는 올해 20편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카카오픽코마 최대 히트 작품인 ‘나 혼자만 레벨업’은 일본 제작진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시즌 2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뒤늦게 일본 기업들은 한국 웹툰 플랫폼을 따라잡기 위해 웹툰 앱을 내놓고 있다. ‘드래곤볼’ ‘원피스’로 유명한 슈에이샤(集英社)는 웹툰 앱 ‘점프툰’을 지난해 5월 출시했다. 이 회사는 네이버웹툰이 운영 중인 아마추어 작가 플랫폼과 같은 형식으로 ‘점프툰 넥스트!’도 내놨다. 한국 웹툰 플랫폼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가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