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달러(약 724조원)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주도해 AI 시대를 이끌겠다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구상에 ‘노란불’이 켜졌다. 지난 4분기 소프트뱅크그룹이 3조원 이상 적자를 내면서 투자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도 최근 1년 새 25%가량 줄었다. 여기에 저비용·고성능 AI 모델을 선보인 중국 딥시크 쇼크로 AI 인프라 투자 거품론이 확산하고, 미국의 국채 금리까지 상승하면서 대규모 자금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 현금 자산 14조원 줄어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작년 4분기 3691억엔(약 3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프트뱅크의 투자 펀드인 비전 펀드 사업이 3527억엔(약 3조3000억원)의 적자를 본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2017년 중동 자금까지 끌어들여 설립한 비전 펀드는 약 200조원 규모로 벤처 펀드로선 세계 최대 규모다. 신기술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해 오며 기술 트렌드를 이끌어 왔다. 현재 엔비디아,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쿠팡, ARM, 아이온큐 등 전 세계 기술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오픈AI 등 AI 사업에 대한 투자는 모두 비전 펀드에서 나온다.
지난 4분기 비전 펀드의 적자는 한국 쿠팡과 중국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의 주가와 평가액이 하락한 영향이 컸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이 좋지 않다. 비전 펀드가 30억달러(약 4조원) 이상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바이트댄스의 틱톡 미국 사업은 고객 정보 유출 우려로 매각 또는 폐쇄 위기에 놓여 있다. 인도네시아 농업 테크 기업 이피셔리는 2년 전 투자 당시 기업 가치가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였지만, 현재 회계 사기 혐의로 청산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투자 여력도 최근 1년간 악화됐다. 작년 12월 기준 소프트뱅크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조7000억엔 수준이다. 1년 전(6조1637억엔)과 비교해 1조5000억엔(약 14조1000억원·약 24%)가량 줄었다. 고토 요시미쓰 소프트뱅크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자금 조달을 위해선 ‘스트리트파이터(거리의 싸움꾼)’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환경이든 견뎌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정의 ‘구애’에 셈법 복잡해진 삼성
소프트뱅크는 분산 투자보다는 특정 영역에 거액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산업을 장악해 왔다. AI 투자에 한발 뒤진 손정의 회장은 최근 대규모 투자 손실에도 AI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달 오픈AI에 15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추가 투자하며, 총출자액이 20억달러로 늘어났다. 소프트뱅크는 데이터브릭스, 데이원, 헬리온, 큐에라 등 AI 기업들도 소프트뱅크의 신규 투자 기업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소프트뱅크 자체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서 손정의 회장이 주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오픈AI·오러클·MGX가 각각 프로젝트의 10~20% 주식을 취득하고, 나머지 자금은 은행 및 투자 펀드 등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소뱅, 과감하게 투자해야 다른 투자자들 호응할 것”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스타게이트 투자금 모집을 주도하는 소프트뱅크가 과감하게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투자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며 “하지만 비전 펀드가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투자 여력이 줄어든 모습은 스타게이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 AI 투자 분위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금리가 상승하면서 차입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부담”이라며 “여기에 중국의 저비용 AI 모델 등장도 자금 확보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정의 회장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회동 자리에 급히 참석해 삼성 측에 스타게이트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비전 펀드에도 투자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실제 투자가 이뤄진 적은 없다”며 “더구나 지금은 삼성이 부진한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스타게이트 투자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소프트뱅크와 오픈AI, 오러클이 ‘스타게이트’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해 미국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달러(약 724조원)가 투입된다. 소프트뱅크는 투자금 조달을 주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