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강국’으로 불리던 한국의 기업들은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시작된 관세 전쟁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하게 원가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숙련공 감소로 인한 인력 공백으로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선일보 테크부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코리아’가 함께하는 ‘2025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두 번째 주제는 숙련공 고갈 문제를 해결할 AI ‘디지털 장인’입니다.
제조 현장에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다. 중소·중견 제조업 현장은 이미 숙련공이 사라진지 오래다. 국내 산업 현장에서는 근로자의 고령화와 제조 산업을 꺼리는 젊은 인력의 감소, 기능 인력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대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지금은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지난 30~40년 간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역전의 용사’들이 대거 은퇴를 앞두고 있다. 금형, 용접, 도장과 같은 전통 기능공부터, 이차 전지 소재, 바이오 제품과 같은 비교적 하이테크 제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위기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단순히 제조 산업의 문제로 볼 수 없으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우리나라 경제 및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장인’ 역할은 기존 인력 대체 아닌 보완
숙련공 부족 문제는 AI(인공지능) 기술 발전 덕분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엔지니어들의 기술을 ‘숙련공’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AI ‘디지털 장인’ 덕분이다. 디지털 장인은 비용 또는 성능적으로 충분히 접근 가능해진 AI를 ‘채용’해 미래의 ‘숙련공’으로 훈련시키고, 모든 엔지니어들의 ‘상향 평준화’를 지향한다. 자칫 기존 노동자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실제 도입한 사례를 보면 ‘대체’ 보다는 모든 엔지니어들이 디지털 장인의 도움을 받아 ‘업 스킬링’ 되는 모습에 가깝다.
디지털 장인 도입은 숙련된 엔지니어들의 문제 해결 과정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후 숙련공들의 인지적 과정 중, AI로 강화하거나 자동화 가능한 영역을 파악하고, 각 인지 기능에 최적화된 AI 에이전트를 를 설계한 후, 각 에이전트가 학습할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줄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게 된다.
이 과정 중 핵심은 기존 엔지니어들의 인지적 프로세스를 에이전트 구조로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숙련공들의 머리속에서 직관적으로 일어나는 인지 과정도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몇 개의 문제 해결 단위로 구조화될 수 있다. 예컨데 고장의 원인을 분석하는 사고의 과정은 이렇다. ① ‘최근 고장 기록 중 유사 사례를 탐색한다’ ② ‘매뉴얼 상의 체크리스트를 확인한다’ ③ ‘기존의 경험지식을 기반으로 보다 근본적 원인과 현상적 문제를 구분한다’ ④ ‘필요하면 다시 ② 번으로 돌아간다’ 등의 일련의 사고 과정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 각각의 과정은 상호 협력하는 전문화된 AI 에이전트로 구현되고, 필요에 따라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를 별도로 설계하기도 한다. 같은 문제 상황에서도 엔지니어 별로 사고의 과정이 다르다. 가능하면 가장 유능한 엔지니어들의 사고를 모방하고, 이를 더 보완·강화하는 방향으로 에이전트 설계를 진행한다.
◇디지털 장인 가능케 한 기술적 진보
제조 및 생산 현장에서의 AI 활용 노력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제조실행시스템)’를 도입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면서, 머신러닝 모델을 활용한 수율 최적화나 불량률 최소화 시도다. 그러나 AI가 생산 현장에서 ‘장인’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게 된 데에는 다음의 기술적 진보들이 뒷받침되었다.
먼저 ‘설명 가능 AI(Explainable AI)다. 설명 가능 AI는 AI모델을 마치 ‘엑스레이(X-ray)’를 찍듯이 설명해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AI 알고리즘이 고도화되고 복잡해질 수록 AI가 답을 내는 과정을 사람이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AI가 최선의 답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답을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면 신뢰가 어렵고 종국에는 적용 자체가 어렵다. 특히, 생산 현장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은 때로 수백~수천억 원 상당의 제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I의 답변을 적용하기에 앞서, 사람이 이해해 신뢰감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다음은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검색 증강 생성(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RAG)’ 기술이다. 설명 가능한 AI가 정형화된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이는데 기여하는 기술이라면, 매뉴얼 문서, 도면, 회의록 등과 같은 비정형 데이터의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데는 LLM의 역할이 크다. LLM의 등장으로 복잡하고 많은 비용이 드는 데이터 전처리 작업 없이도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각종 기술 문서들에 담긴 지식을 사람이 기록한 내용 그대로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LLM은 그 자체만으로는 종종 ‘그럴듯한 거짓말’, 즉 환각을 보여준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기술 요소인 RAG는 일종의 ‘AI전용 백과사전’으로 현재는 거의 모든 AI애플리케이션에 필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데이터로 표현 못하는 경험’까지 전수
이런 기술들은 이미 공개돼 있고, 구현도 어렵지 않다. 즉 디지털 장인 도입에 있어서 기술적 장벽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장인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데이터의 진실성(Data integrity)’이 필요하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세상과 연결된다. 즉 데이터가 세상의 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똑똑한 AI일지라도, 현실 세계에 적용 가능한 답을 내 놓을 수 없다. 당연한 명제처럼 보이지만 이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업이 생각보다 많다. 다음은 ‘암묵지의 축적’이다. 진실한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하더라도 기존의 데이터마이닝을 넘어서 모두가 기대하는 숙련공의 ‘통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데이터만으로는 어렵다.
이 지점에서 숙련공과 AI의 차이는 결국, 데이터에 표현돼 있지 않은 암묵적 경험 지식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AI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숙련공의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지식이 전달돼야 한다. AI 발전으로 이제는 사람에서 AI로의 지식이전이 편리해졌다. 암묵지를 기록할 때, 정형화해 기록하는 수고 없이 마치 사람에게 전수하듯이 AI에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만약 당신의 회사에서 누군가 이러한 암묵적 경험 지식들을 회의록이나 이메일, 혹은 메모의 형태로 축적해 두었다면 경쟁사보다 더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더 나은 성능의 디지털 장인을 구현할 수 있다.
AI를 도입한 첫날부터 AI에게 최고의 성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AI도 업무를 배우고 조직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조직에 AI를 도입하는 과정은 마치 똑똑하지만 현장 경험이 없는 대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유사하다. 업무 가이드를 충분히 제공하고, 실수가 발생했을 때 정확히 피드백을 주면 AI는 더 빨리 ‘성장’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사람 선배’들도 AI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AI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AI와 사람이 어떻게 상호 협력적으로 일해야 하는지가 고려돼야 한다. ‘도제식 학습(Human-In-The-Loop)’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AI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사람이 모니터링하고 성과를 관리하고, 필요하면 재교육을 시키는 과정을 함축한 표현이다.
◇피지컬AI, 장인의 ‘섬세한 손끝 기술’까지 모방
디지털 장인 도입 효과는 생산현장에서 문제 발생 시 해결이 빨라진다는 점에 있다. 특히 외국산 장비의 경우, 해외에 있는 제조사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몇 주까지도 소요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칫 출하지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장인을 도입하면 문제해결 시간을 며칠에서 몇시간까지도 단축이 가능하며, 이는 단위시간당 생산량 증대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디지털 장인 도입의 보다 궁극적인 기대효과는 숙련공들의 은퇴나, 공장 운영자의 손바꿈이 발생해도 공장의 운영 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향 평준화 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인력의 개인기에 의존해왔던 노하우의 영역을 기업의 시스템 자산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장인은 머지않은 미래에 장인의 ‘섬세한 손끝 기술’도 디지털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피지컬 AI(Physical AI)가 현실화한다면, AI는 주어진 데이터와 언어 정보 속에서만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센서)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지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가상공간속에 실제와 동일한 복제세상을 구성해놓고, 그 안에서 수천 번, 수만 번의 실험을 통해서 기존에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결과들을 예측할 수 도 있다. 정밀한 로봇 등 물리적 시스템에 연계될 경우 실제 장인들의 손에서만 재현되던 정교한 감각적 작업도 모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