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25% 이상 관세’ 정책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세는 메모리·파운드리(위탁 생산) 모두에 적용된다. 메모리가 주력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뿐 아니라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메모리는 대량 생산 후 판매하는 양산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에 훨씬 민감하다. 고객 요구에 따라 ‘맞춤형’으로 만드는 파운드리와 차이가 있다.

그래픽=김성규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에서 생산해야 하지만,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가동 중인 오스틴 공장과 건설중인 테일러 공장은 모두 파운드리 시설이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을 준비 중이다. 미국에 판매하는 한국 메모리는 관세를 피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내년부터 아이다호주에서 메모리 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내부적으로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 맞는 한국 반도체

미국 정부는 아직 관세 부과 대상국, 관세 대상 반도체 제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반도체도 철강·알루미늄처럼 보편 관세로 적용할 경우 메모리에 치중된 한국이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 107억달러(약 15조4000억원) 가운데 메모리 비율은 79%에 이른다. 삼성과 SK는 한국과 중국에서 D램,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는데 한국 생산 비중이 약 70% 가까이 차지한다.

현재 미국 마이크론은 사실상 대부분의 메모리를 대만·일본 등에서 생산 중이다. 똑같이 관세가 부과된다면, 한국 메모리가 불리하지는 않다. 변수는 마이크론이 내년부터 자국에서 메모리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론은 1250억달러(약 180조원)를 투자해 아이다호주와 뉴욕주에 대규모 메모리 공장을 짓고 있다. 아이다호주 공장은 내년, 뉴욕주 공장은 2028년에 양산을 시작할 전망이다. 미국에 수출되는 메모리의 상당 부분이 마이크론 제품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완제품은 품질에 큰 차이가 없어서 몇 센트 가격 차이에 따라 구매가 결정된다”며 “관세 25%를 부과받게 되면 마이크론 미국 공장과 경쟁 자체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메모리 공장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이미 파운드리 공장을 추진 중인 데다, 건설에만 4~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중국에 메모리 공장을 가동 중인 만큼,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를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메모리가 기술력으로 관세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마이크론은 범용 메모리에 이어 고부가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5세대 HBM3E 12단의 경우 한국 제품보다 전력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이크론의 HBM 시장 점유율은 현재 3%(지난해 기준)로 SK하이닉스(65%), 삼성전자(32%)에 크게 밀리지만 최근 엔비디아 물량을 수주하는 등 올해 안에 25%까지 높인다는 목표다. 일부 낸드 기술에선 삼성보다 앞선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조사 기관 팁랭크스는 “마이크론이 삼성·SK와 정면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성규

◇미국 내 TSMC와의 경쟁도 벅차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현재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65%, 삼성전자 9.3%, 중국 SMIC 6% 순이다. TSMC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파운드리 제품이 삼성전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관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엔비디아·퀄컴 등 미국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여력이 그만큼 있는 것이다. 더구나 TSMC는 미국 정부와 인텔 파운드리 사업 부문 인수를 추진하면서 미국 내 입지는 더 탄탄해질 전망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TSMC가 인텔 파운드리를 인수해 합자회사를 세우더라도 트럼프 주도로 나중에 사실상 미국 회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쉽지 않다. 수주를 제대로 못 하면서 오스틴 공장의 가동률은 크게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당초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가려던 테일러 공장의 가동 시기도 내년으로 늦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