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칩 팹리스(설계 전문 업체) 딥엑스는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5에서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노스홀에 전시관을 운영했다. 지멘스·애벗·3M·히타치 등 대기업들이 주로 부스를 차린 곳이다. 고객 유치가 가장 치열한 이곳에서 딥엑스는 나흘 동안 1만6000명 넘는 집객 수를 기록했다. 올해 CES 주관사인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로부터 꼭 가봐야할 기업으로 선정됐고, 지난해엔 CES 혁신상 3관왕을 차지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 업체가 주목받는 것은 AI 칩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NPU(신경망처리장치)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NPU는 사람 두뇌를 모방해 AI 학습에 쓰이는 인공 신경망을 구현한 AI 반도체다.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최근 AI 연산에 활발히 쓰이지만 원래 컴퓨터 그래픽 처리에 맞춰 개발됐기 때문에 AI에 적용 시 전력 효율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딥엑스의 NPU는 엔비디아 GPU에 비해 전력 대비 성능 비율(전성비)이 최대 20배, 가격 경쟁력은 10배가량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판교 딥엑스 본사에서 만난 김녹원 대표는 “이번 CES에서 만난 고객사만 1000곳”이라며 “올해 NPU 양산 제품을 본격 출시해 글로벌 AI 칩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NPU 성능 입증한 ‘버터 벤치마크 테스트’
딥엑스는 올해 CES에서 칩 위에 버터를 올려 놓는 ‘버터 벤치마크 테스트’로 관심을 끌었다. AI 반도체는 저전력과 발열 억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경쟁사 제품과 나란히 칩 위에 버터를 올려두고 열 효율을 비교한 것이다. 경쟁사 제품은 10분 만에 온도가 60도까지 올라 버터가 녹았지만 딥엑스 반도체는 1시간 이상 형태를 유지했다.
김 대표는 “AI 반도체는 AI 연산 처리 시 열이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 제품은 체온보다 낮은 35.5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만져본 해외 업체 관계자도 ‘차가운 느낌’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딥엑스가 올해 본격 양산할 첫 NPU 제품인 ‘DX-M1′은 AI 작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AI용 반도체다. 대형 서버에 들어가는 엔비디아 GPU와 달리 실제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노트북 PC 등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말한다. 서버와 연결 없이 기기 안에서 연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통신 지연 없이 빠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NPU 칩은 인텔, 브로드컴, 퀄컴 등이 시도했지만 아직 확실한 시장 지배자는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형태의 기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가격, 열효율, 성능을 모두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DX-M1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테일 산업에 딥엑스의 AI 기술을 적용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상품을 인식하고 정확한 가격 태그를 부여할 수 있어 100% 무인화가 가능해진다”며 “특히 높은 제조 효율을 위해 빠르게 대응하고 움직여야 하는 공장 로봇에 탑재해 무인화 공장 시스템으로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출신 반도체 전문가
김 대표는 창업 전 애플, 브로드컴, 시스코 등 미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반도체 개발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애플에서는 아이폰, 애플워치 등의 칩 개발에 참여했다. 하지만 AI 산업이 고도화되던 2010년대 중반 AI 기술이 부상하는 것을 보면서 직접 자체 반도체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돌아와 딥엑스를 창업했다. 당시 터득한 노하우가 DX-M1 개발에 적용된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 NPU 칩은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NPU 칩의 4분의 1 크기로 최소 네 배 이상의 성능, 전력 효율성,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딥엑스는 올해 상반기 DX-M1의 양산을 시작한다.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위탁 생산) 5나노 공정에서 90%에 달하는 수율을 확보한 상태다. 경쟁사의 NPU가 10나노대에서 생산되는 것과 달리 딥엑스는 선단 공정으로 NPU를 생산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AI 산업에서 최종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AI 반도체를 만드는 제조 분야”라며 “엔비디아가 서버에서 AI를 학습시키는 영역에서 강자라면 우리는 실제 사용자 기기나 산업 현장에서 서버 없이 구동되는 AI 기기 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NPU
신경망처리장치(NPU·Neural Processing Units)로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인공지능(AI) 반도체다. 인간 뇌가 수많은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신호를 주고받으며 작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가 적용됐다. 인터넷 연결 없이 스마트폰·PC 내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해 새로운 해답을 내놓는 추론 기능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