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TV, 스마트폰, D램 등 삼성전자 주요 사업의 세계 점유율이 전년보다 모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TV 판매량,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10년 이상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도 세계 1위다. 하지만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에 점점 시장을 내주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삼성전자가 지난 11일 공개한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지난해 삼성전자 TV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8.3%로, 2023년 30.1%에서 하락했다. 스마트폰 역시 2023년 19.7%에서 지난해 18.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D램 점유율은 42.2%에서 41.5%로,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패널은 50.1%에서 41.3%로 낮아졌다. 전장·오디오 부문 자회사인 하만의 디지털 콕핏은 시장점유율이 16.5%에서 12.5%로 하락했다. 디지털 콕핏은 차량에 들어가는 전장 부품이다.

본지가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사업보고서를 분석했을 때, 주요 사업 부문의 점유율이 모두 하락한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자 측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전 사업 부문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반도체뿐 아니라 TV·가전에서도 고부가가치 제품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파운드리 ‘수율’ 문제 처음 언급

이번 사업보고서에는 반도체를 비롯한 사업 전반에 대한 삼성의 위기의식이 드러났다. 특히 그동안 공식적 언급을 피해 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수율(收率·정상품 비율) 문제도 처음 꺼냈다.

삼성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수년째 적자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보고서 항목 중 ‘경영 진단 및 분석 의견’ 항목에서 파운드리 사업에 대해 “첨단 공정은 중장기 수요 확보가 중요한 만큼 기존 양산 공정의 안정적인 수율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사업보고서에서 파운드리를 언급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수율 문제를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픽=김현국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으로 언급한 2014년 사업보고서에서는 “경쟁사보다 첨단 공정을 먼저 개발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년 수조 원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제품 양산으로 첨단 공정 기술 리더십을 확고히 하겠다(2021년)’ ‘올해를 체질 전환의 기회로 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차세대 2나노 개발에 집중하겠다(2022년)’ 등 구체적 대응책을 언급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2조원이나 되는 적자를 낸 2023년 사업보고서에서는 ‘공급 능력 확대’를 대응 방안으로 내놓으면서도 수율을 언급하진 않았다. 그만큼 올해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설 투자로 공급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수율을 끌어올려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대만 TSMC와 기술 격차를 줄이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다.

TSMC는 작년 말 최첨단 공정인 2나노 공정 제품의 수율이 60%를 넘어서 올해 하반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 수율이 20~30%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 확보에 쓸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고사양 메모리 양극화 심화

이미 TSMC와 시장점유율 격차는 60%포인트가량 벌어진 데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의 전폭 지원을 받고 있는 3위 SMIC와 시장점유율 격차가 2.6%포인트까지 줄었기 때문이다.

메모리에 대한 자체 진단 내용도 담겼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이 모바일·PC용과 서버용 같은 고사양 메모리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봤다. 특히 AI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신규 GPU(그래픽 처리 장치) 공급에 제약이 있다고 인정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고성능 메모리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엔비디아나 빅테크 등에 납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와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

삼성전자는 TV 산업에 대해 “업체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고, 패널 가격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했다. 디스플레이도 패널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중저가 시장을 장악한 중국 TV, 패널 기업들은 삼성이 주력하는 프리미엄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시장이 성숙함에 따라 하드웨어뿐 아니라 AI, 보안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하만의 전장 부품은 미·중 무역 갈등과 원자재 가격이 불안 요소가 될 것으로 봤다.

삼성전자는 이런 어려움을 AI와 기술력으로 돌파할 것이라고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먼저 TV는 초대형 TV와 AI 신기술을 적용해 기술 격차를 벌릴 계획이다. 스마트폰은 작년 세계 최초 AI 폰을 내놓은 만큼 R&D 투자로 AI를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는 메모리 첨단 공정 확대와 파운드리 수율 확보가 과제다.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에 편중된 사업을 다각화하고 프리미엄 TV 패널 제품을 강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