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가 엔비디아·AMD 등 미 반도체 기업들과 손잡고 적자 상태에 빠진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부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트럼프 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술을 끌어올리고, 자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생존을 위해 TSMC에 인텔 파운드리 인수를 요구하고 있다.
자금 부담 때문에 독자 인수가 어려운 TSMC는 인수 파트너를 찾고 있다. 특히 대상으로 엔비디아가 주목받고 있다. TSMC(생산)와 엔비디아(설계) 동맹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실제 TSMC와 엔비디아가 함께 인텔 파운드리를 인수한다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수 있다.
인텔은 12일(현지 시각) 반도체 업계 베테랑인 립부탄(Lip-Bu Tan∙65) 전 이사를 새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했다. 탄 신임 CEO는 전임 펫 겔싱어 전 CEO와 달리 구조 조정을 통한 파운드리 사업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어 인텔 파운드리 인수 속도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TSMC, 엔비디아와 인텔 파운드리 인수하나
인텔은 2018년 파운드리 사업에서 철수했다가 2021년 재진출했다. 당시 5년간 총 1000억달러(약 145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4개 주에 첨단 반도체 공장 4곳을 세우고 기존 공장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재진출 선언 후 파운드리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지난해 파운드리 부문에서만 134억달러(약 19조4800억원) 적자를 냈다. 인텔은 고강도 구조 조정과 사업 재편에 돌입해야 했다.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는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 제조의 상징 격인 인텔을 살리기 위해 TSMC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 1000억달러를 신규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겠다고 밝혀 인수를 위한 추가 투자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TSMC 단독으로 인텔 파운드리에 자금을 대고, 운영 노하우, 기술력까지 전수해야 할 경우 부담이 너무 크다.
TSMC는 대신 합작 회사를 통한 인텔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퀄컴에 ‘합작 회사를 세워 인텔의 파운드리 지분을 함께 인수하자’고 제안했다.
TSMC와 미국 반도체 기업들 간 연합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내 TSMC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특히 엔비디아의 AI 칩 물량을 TSMC 미국 공장과 인텔 파운드리에서 맡는다면 TSMC와 엔비디아 간 밀월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가 미국 기업 물량을 싹쓸이한다면 삼성전자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위기의 인텔, 새 수장 임명
지난해 말 사임한 겔싱어에 이어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은 립부탄이다. 탄 신임 CEO는 중국계 말레이시아 출생으로 싱가포르 난양공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12년간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인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스의 CEO로 재직했다. 반도체 스타트업과 소프트뱅크 이사를 거쳐, 실리콘밸리 투자사 월든 인터내셔널의 회장을 지냈다.
탄 CEO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이사회 멤버로 인텔에 몸담은 적이 있다. 당시 겔싱어 CEO 등 경영진과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마찰을 빚다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탄 CEO는 전임 겔싱어와 달리 TSMC, 엔비디아 등과 원만한 관계인 것도 이번 인텔 파운드리 인수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탄 CEO는 케이던스 CEO 시절 TSMC의 ‘단골 고객’이었으며, 마크 리우 전 TSMC 회장이 최근 세운 기술 싱크탱크 이사회에 참여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도 교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월든 인터내셔널이 최근 몇 년간 중국 AI, 반도체 회사에 투자해 온 사실이 밝혀져 2023년 미국 의회로부터 해명을 요구받은 일도 있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대만 관련 인물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