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치로 스케일업(확장) 하라(scale up to the maximum).”
18일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 글로벌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연례 행사 ‘GTC 2025’가 열렸다. AI 관련 개발자들이 모여 AI의 기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기조연설 무대에 나타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첨단 AI의 시대엔 지금보다 100배 이상의 컴퓨팅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월 중국의 저비용·고성능 AI 딥시크 쇼크 이후, 글로벌 AI 업계에선 값비싼 엔비디아 AI 칩을 구매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이 맞느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황 CEO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AI 시대를 선도하고 싶다면, 최신의 AI 칩을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날 황 CEO의 기조연설에 대해 AI 업계에선 “예전처럼 압도적인 기술력이나 명확한 시장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젠슨 황은 주식 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서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며 “예전엔 그가 고객사 이름만 언급해도 주가가 뛰었지만, 이번 기조연설의 반응은 머쓱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전날보다 3.4% 떨어졌다.
◇차세대 AI 칩 잇따라 공개
황 CEO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보여주기 위해 결혼식 하객 자리 배정에 관한 질문을 AI 모델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 직접 시연했다.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생성형 AI인 메타의 ‘라마’와 추론형 AI인 딥시크의 ‘R1’을 대상 모델로 선택했다. 생성형 AI는 학습한 데이터에서 답을 찾는 방식이고, 추론형 AI는 사람처럼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답을 내놓는다. 최근엔 빅테크들이 생성형 AI보다 추론형 AI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생성형 AI인 라마는 토큰(AI 모델에서 처리되는 데이터 단위) 439개를 생성했고, 추론형인 R1은 8559개를 생성했다. 토큰을 많이 생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AI 칩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황 CEO는 “AI가 추론형으로 똑똑해지면 컴퓨팅 자원을 예전보다 적게 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는 추론형 모델이 훨씬 많은 컴퓨팅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날 황 CEO는 향후 2년 주기로 AI칩 신제품을 선보이겠다는 로드맵을 공개했다. 지난해 블랙웰을 공개한 데 이어 2026년에는 차세대 AI 칩인 ‘루빈’을, 2028년에는 ‘파인만(Feynman)’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황 CEO는 지난해 6월 루빈을 공개한 적이 있지만, ‘파인만’ 구상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전작 AI 칩인)호퍼를 사려면 사셔라, 그런데 성능이 25배 나은 블랙웰을 많이 살수록 사실상 돈을 아끼는 것 아니겠나”라고 하자, 현장에 있던 1만7000여 명의 참석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황 CEO의 이 같은 ‘스케일업’ 전략은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 고성능의 엔비디아 AI 칩에는 더 많은 HBM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잡는다
이날 엔비디아는 대만 TSMC와 함께 반도체의 전력 소비를 줄이는 ‘네트워킹 칩’ 기술을 선보였다. ‘네트워킹 칩’은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송하고 처리하는 데 특화된 반도체를 말한다. 황 CEO는 “이 기술은 향후 (지금은 전력 소비 문제로 실현이 어려운) 수백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된 AI 데이터센터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황 CEO는 주력 사업인 AI 칩 외에도 다양한 차세대 먹거리를 선보였다. 황 CEO는 노트북에 직접 연결해 개별 개발자가 무거운 AI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개인용 AI 수퍼컴퓨터 ‘DGX 스파크’와 ‘DGX 스테이션’을 공개하며 “집에 엔지니어가 있다면 이번 크리스마스의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했고, 디즈니·구글 딥마인드와 함께 개발한 로봇 ‘블루’를 무대 위로 부르기도 했다. 황 CEO는 이날 “향후 피지컬AI(로봇) 시장은 수조 달러 규모의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며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 ‘아이작 그루트 N1’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