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14일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에서 퓨리오사AI NPU칩을 들어보이고 있다./뉴스1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공지능(AI) 100조원 투자와 ‘한국형 챗GPT’ 전 국민 무료 사용, 국가 AI 데이터 클러스터 조성 등을 담은 ‘AI 기본 사회’ 정책 구상을 지난 14일 발표했다. 전 세계 산업·기술의 패러다임을 뒤바꿔 놓는 AI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 정책 대결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중요한 만큼 무책임하고 선심적 내용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전 대표가 내놓은 ‘AI 기본 사회’의 주요 내용에 대해 AI와 반도체, 투자 업계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들은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큰 방향에선 검토할 만한 내용”이라며 “다만 실행을 위해선 탈원전 등 민주당 정책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했다.

① 인공지능에 100조원 투자

AI 주권 확보 위한 자금 마련하려면 대기업 AI 투자에 파격적 지원해야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평소 전문가들도 한국이 AI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해 온 규모다. 한국만의 ‘소버린(주권) AI’를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라는 것이다. 소버린 AI는 자국 기업이 자국 언어·문화·가치관을 기반으로 만들고, 자국을 위해 활용하는 AI를 말한다. 자국민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국방·의료·복지 등 공공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그래픽=양인성

관건은 실현 가능성이다. 미국 스탠퍼드 AI 연구소가 내놓은 ‘글로벌 AI 인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AI 투자 금액은 13억달러(약 1조8500억원). 정부의 올해 AI 예산은 최근 편성된 추경을 포함해 3조6000억원이다. 우리 정부의 1년 연구·개발(R&D) 예산이 약 30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현대차·SK 등의 투자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 등 파격적 혜택이 필요하다. 실제 미국은 약 70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추진하며, 삼성전자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국내 IT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AI 전쟁’을 위해선 민주당부터 반(反)기업 정서를 불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주요 선진국들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소버린 AI를 개발하고 있다. 일본은 작년 말 AI 산업에 향후 10년간 민간과 정부 예산을 합쳐 50조엔(약 500조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로 했다. 올 초 프랑스 정부는 1090억유로(약 176조원) 규모의 AI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아랍에미리트·캐나다 등의 펀드·기업에서 투자를 받겠다는 구체적 계획까지 내놨다.

② 국가 AI 데이터 클러스터 조성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 탈원전 포기하고 전력망 확충 필요

이 전 대표가 말한 100조원의 AI 투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은 데이터센터 건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선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을 확보해 국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국가 AI 데이터센터는 AI 업계가 꾸준히 요구한 사항이다.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AI 개발에 필요한 GPU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GPU 구입비와 부지 매입비만 드는 것이 아니다. 전력 생산과 송배전망 건설 등 인프라 투자를 포함하면 투자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전력 수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에 비유된다. 반도체를 돌리고,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 주요 빅테크들도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이 부족해 원전에서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은 아직 공식적으로 탈원전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다. 정책 변화가 없다면,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구축은 빈말이 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 운영을 위한 전력망 구축도 필요하다. 발전 설비 용량을 아무리 늘려도 전력망이 없으면, 데이터센터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실제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송전 선로 준공이 늦어지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당시 밀양 송전탑과 관련해 “권력의 밀어붙이기식 강행은 중단돼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밀양 송전탑은 6년 만에 완공됐다.

③ 전 국민 무료 한국형 AI 추진

챗GPT 등 이미 무료로 쓰는데… 주요 정책마다 ‘기본·공짜’ 내걸어

이 전 대표의 표현만 보면, 마치 ‘무상 급식’처럼 값비싼 AI 모델을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등 글로벌 빅테크가 개발한 AI는 이미 무료다. 기업들이 유료 버전을 내놓긴 했지만 대부분 전문가를 위한 것이다. 이 전 대표의 발표만으로는 ‘한국형 AI’를 국가가 직접 개발한다는 것인지, 기업을 지원해 만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국가가 직접 개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는 “정부 주도로 AI를 만들겠다는 것은 마치 시장에서 외면당한 지자체의 ‘공공 배달 앱’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정책 이슈를 제기할 때 전(全)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해 준다는 취지가 반영된 ‘기본 사회’ 개념을 적용해 왔다.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본 소득’, 무주택자에게 제공하는 공공 임대주택 개념의 ‘기본 주택’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전 대표의 ‘기본 사회’는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였다.

이 전 대표가 ‘AI 기본 사회’를 들고나온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AI가 국가적 과제이자 모든 국민의 관심사라는 측면에서 주제만 새로 바꿨을 뿐, ‘기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전 대표 측은 “기본 시리즈를 살펴보면 이미 다른 선진국에서 하고 있거나, 기존에 있는 정책의 확장판인 것이 많다”면서 “건설적인 정책 토론을 통해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④ AI 단과대 설립, 석박사 인재 양성

이공계 탈출·의대 쏠림 해결하려면 현 정부보다 과감한 의료개혁안 내야

이 전 대표는 “AI 인재 육성도 핵심 과제로 꼽으며 지역 거점 대학에 AI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한다”고 했다. 국가 거점 국립대학은 전국 9곳으로, 이 전 대표 말대로 이곳에 AI 단과대학을 설립하면 AI 분야 인재를 수십~수백 명 더 양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재들이 이 분야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요 대학에서도 ‘이공계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대의 신입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작년 1학기까지 자퇴한 신입생 611명 가운데 공대생이 187명(30.6%)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이공계 이탈은 의대 쏠림 현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광주광역시 호남대 인공지능(AI)융합대학은 지난해 정시 모집에서 110여 명을 뽑는데 70여 명만이 지원했다. 어렵게 배출한 인재들도 주 52시간제 등 규제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 활용이 어렵다. AI 인재 확보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윤 정부 때보다 과감한 의료 개혁안을 내놔야 한다.

인재를 키울 교수진도 부족하다. 2023년 고용노동부의 신기술 분야 인력 수급 전망을 보면 AI 분야 고급 인력으로 분류되는 연구·개발(R&D)은 수요(2만1500명)의 23%만 배출돼 1만6600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학과를 만들어도 학생들을 가르칠 고급 인력도 없는 것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 수월성 교육 등에 대한 민주당의 기본 교육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AI는 산업 특성상 특출난 재능의 개발자가 산업 전체를 이끈다”며 “교육 평준화를 강조하는 정책으로는 이 같은 인재를 육성하고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