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업무 보조용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코파일럿’을 윈도 운영체제(OS)와 사무용 소프트웨어 제품(M365)에 끼워 파는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가 최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파일럿은 워드·파워포인트·엑셀 등 MS의 업무용 소프트웨어 작업을 돕는 AI 서비스다. MS는 압도적 점유율을 가진 ‘윈도’와 사무용 소프트웨어 제품(M365)에 끼워 팔면서 일부 가격을 올려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MS 관계자와 면담 후 “위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올해 초 사실상 조사를 중단했다.
MS의 ‘코파일럿 끼워 팔기’는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현재 반독점법에 따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경쟁 당국이 오히려 글로벌 빅테크에 면죄부를 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MS의 시장 독점 때문에 국내 AI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황폐화되고, 결국 제품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MS는 과거 ‘윈도’에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끼워 넣어 판매하다가, 미국의 반독점법에 몰려 기업 분할 위기에 몰린 적도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한국 규제 당국이 MS 같은 빅테크에는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고, 국내 업체만 엄격하게 규제하는 관행이 우려된다”고 했다.
◇독점 앞세운 MS의 ‘코파일럿’ 끼워팔기
MS는 2023년 대화형 AI 코파일럿을 출시한 후 윈도 운영체제(OS)가 기본 탑재된 AI 노트북에 전용 버튼을 넣거나, 사무용 소프트웨어 ‘M365’에 함께 묶어 판매했다. 특히 M365 신규 이용자는 30~40% 비싼 코파일럿 포함 제품만 구매할 수 있게 했다. 국내 OS 시장에서 ‘윈도’ 점유율이 86%, 국내 문서 편집 프로그램 시장에서 M365 점유율이 70%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용자 대부분은 코파일럿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 산업계에서 “MS가 시장 독점력을 앞세워 국내 AI 시장 장악에 나서고 있다”며 공정위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본지가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받은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작년 10월 국감에서 ‘코파일럿 끼워팔기’ 문제가 지적되자, 공정위는 본격적인 조사 착수를 위해 MS 관계자를 면담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챗GPT 같은 확고한 1위 사업자(점유율 59.7%)가 있다는 점, 제미나이(구글)같이 대체 가능한 사업자들이 경쟁 중”이라며 MS에 대한 조사를 사실상 중단했다. 글로벌 AI 시장에서 MS가 1위 사업자가 아니라는 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판단은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시장의 경쟁 제한성을 판단하는 데 글로벌 생성형 AI 시장의 점유율을 살피는 건 문제가 많다”며 “MS 워드 같은 프로그램은 국내 문서 편집 프로그램 시장에서 ‘한글과컴퓨터’라는 기업과 경쟁하고 있고, 끼워팔기 행위로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하 의원은 “국내 기업에는 저승사자, 해외 기업에는 허수아비처럼 굴면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를 세울 수 없다”고 했다.
공정위의 MS에 대한 이번 결정은 이전 사례와도 모순된다. 공정위는 작년 7월 구글 유튜브 뮤직의 끼워팔기를 제재하며 멜론·벅스·지니뮤직 같은 국내 음원 플랫폼에 대한 영향력을 살폈다. ‘유튜브 뮤직’은 글로벌 시장에선 ‘스포티파이’에 밀려 1위 사업자가 아니지만, 국내 음원 플랫폼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제재를 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MS는 이미 거대 통신사와 손잡고 국내 AI 시장 장악에 나선 상황”이라며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S 독점에 국내 AI 업계 황폐화
MS의 시장 독점에 따른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MS는 올해 들어 코파일럿을 이유로 M365 제품 가격을 기습적으로 인상했다. 사전 공지 없이 지난 1월 M365 연간 구독료를 최대 40%(국내 기준) 올렸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했다는 것은 사실상 시장 독점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MS의 가격 인상은 공정위가 최근 제정한 다크패턴(눈속임 상술) 방지법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공정위는 지난 2월 14일부터 정기 구독료를 인상하는 전자상거래 사업자는 인상 30일 전에 반드시 소비자 동의를 받아야 하고 위반 시 영업정지와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MS코리아는 이에 “M365에 포함된 생성형 AI(코파일럿) 기능은 고객의 기대와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정작 미국에선 작년 말 시작된 MS에 대한 반독점 조사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MS가 애저(클라우드 제품)와 코파일럿, M365 같은 제품을 묶어 판매하는 행위가 AI 시장 경쟁을 해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MS가 오픈AI에 투자한 건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연합도 독점을 앞세운 MS의 끼워 팔기는 강력 제재한다”고 말했다.
☞MS 코파일럿(Copilot)
2023년 12월 출시한 MS의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오픈AI의 모델 ‘GPT-4’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MS는 코파일럿을 운영체제(OS) ‘윈도’와 워드·엑셀이 포함된 사무용 프로그램 ‘M365’, 인터넷 브라우저 ‘엣지’ 등에 포함시켜 서비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