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의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 화폐가 “환경 파괴를 가속하는 더러운 화폐”라는 비난을 받으며 가치가 급락하자 오히려 가치를 발한 가상 화폐들이 있다. 기존 가상 화폐와 비교해 전력 소모량이 적다고 알려진 이른바 ‘저전력 가상 화폐(코인)’다. 시가총액 4위인 가상 화폐 에이다(ADA)의 경우, 지난달 초까지 1개당 1.6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던 것이 가상 화폐의 환경파괴 문제가 불거진 13일 이후 가격이 급등, 지난달 16일엔 사상 최고가인 2.41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에이다의 1일 현재 가격은 1.75달러대다. 미국의 금융투자 전문매체 인베스터플레이스는 “시장은 가상 화폐가 가진 환경 문제에 대해 계속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며 “녹색 코인(Green Coin)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업증명' 대신 ‘지분증명’

저전력 코인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비해 낮은 전력 소비를 보이는 이유는 코인을 만들어내는 ‘채굴(mining)’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채굴 과정에서 이른바 작업증명(Proof of Work·PoW)이란 방식을 사용한다. 사람이 수십년 걸릴 수학적 계산을 수초 만에 해내는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이용해 가상 화폐의 거래 장부인 블록체인을 끊임없이 생성·유지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이 중 연산을 가장 빨리 해 낸 사람에게 더 많은 가상 화폐를 준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대의 컴퓨터(채굴기)가 경쟁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저전력 코인들은 이와 달리 ‘지분증명(Proof of Stake·PoS)’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가상 화폐를 보유한 사람(노드)들이 새 블록의 생성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보유한 가상 화폐의 규모가 클수록, 새 가상 화폐의 발행 권한과 발행량이 많아질 수 있다.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가 더 많은 의결권을 가지거나 은행 예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이자를 받는 것과 같다. 채굴 경쟁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적고, 그만큼 새 블록을 형성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이 단축된다. 그만큼 거래 처리 속도도 빨라진다. 에이다의 경우 거래 1건당 전력 소모량이 0.5479kWh로 비트코인의 1290분의 1, 리플은 0.0079kWh로 비트코인의 8만9493분의 1 수준이다. 에이다의 거래 속도는 1초당 257건으로 비트코인(1초당 3~4건)의 약 7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더리움도 저전력 전환

지분증명 방식의 가상 화폐는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환경 이슈가 중요해지면서 전체 가상 화폐 시장에서 그 비중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 기준 에이다의 시가총액은 560억달러(약 62조원)에 이른다. 이 밖에 리플(시총 461억달러), 폴카닷(214억달러), 폴리곤(139억달러), 이오스(59억달러), 테조스(33억달러) 등이 시가총액 100위권 안에 들어간다.

이더리움도 ‘저전력 코인’으로 변신하기 위해 최근 지분증명 방식의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이더리움을 개발한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연말까지 지분증명 방식 전환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며 “지분증명 업데이트가 완료되면 블록체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탄소배출 이슈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CBDC(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도입도 가상 화폐의 저전력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CBDC의 경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네트워크 운영 방식은 은행 중심의 폐쇄적인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가상 화폐 발행 및 장부 관리 권한을 중앙은행이나 중앙은행의 위탁을 받은 소수의 금융기관만 갖게 되므로 전력 소모량이 문제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자본 집중·보안 취약은 단점

그러나 지분증명 방식의 저전력 가상 화폐는 여러 단점을 안고 있다. 우선 작업증명 방식보다 보안성이 낮다. 지분증명 방식의 가상 화폐는 인터넷에 상시 연결된 전자지갑(핫월렛)을 통해서만 보관이 가능하다. 작업증명 방식의 가상 화폐가 USB 메모리처럼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전자지갑(콜드월렛)에 보관 가능한 것과 비교된다. 핫월렛은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해킹 위협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본의 집중’ 가능성이다. 지분증명 방식은 가상 화폐 보유량에 비례해 추가 코인 획득량이 결정되므로 가상 화폐 부자가 더 많은 가상 화폐를 가져가는,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으로 점점 지분을 늘려 50% 이상의 지배적 지분을 가진 개인 혹은 소수 집단이 해당 가상 화폐의 블록체인 장부 내용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다. 가상 화폐 업계에선 이를 ’51%의 공격'이라고 부른다.

최악의 경우 내가 보유한 가상 화폐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뺏기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탈중앙화를 통한 금융권력의 해체를 내세운 블록체인 기술의 정체성이 뿌리부터 무너진 셈이 된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법정화폐의 절반 이상을 가진 집단을 찾기 어렵듯, 현실적으로 가상 화폐 지분을 절반 이상을 차지하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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