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시장을 남용한 헝다그룹(영어명 에버그란데)은 중국 신(新)자본주의의 최악을 대표한다.”

시트론 리서치 설립자 앤드루 레프트/블룸버그

최근 월가(街)에선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의 재앙을 예언한 9년 전 공매도 보고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보고서 작성자는 올해 초 비디오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 공매도로 개미(개인 투자자)들과 혈전을 치렀던 시트론 리서치 설립자 앤드루 레프트다.

레프트는 2012년 6월 헝다의 주가 하락에 베팅해 공매도 보고서를 낸 뒤, 실제로 헝다 주가가 장중 20% 가까이 폭락하면서 160만 홍콩달러(약 2억4400만원)의 수익을 냈다. 그러나 홍콩 증권 당국이 공매도 보고서를 시장 교란 행위로 판단하면서 레프트는 공매도로 벌어들인 수익을 모조리 반납해야 했다. 2016년부터 5년간 홍콩 증시에서 거래 금지도 당했다. 공교롭게도 헝다의 파산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올해, 레프트의 홍콩 증시 거래 금지 기간도 만료된다.

◇9년 전에도 “헝다는 자본잠식 상태”

레프트는 당시 57쪽 분량의 파워포인트(PPT) 보고서에서 “헝다가 자산을 과대 평가하고, 부채는 과소 계상하는 방식으로 분식 회계를 했다”며 “유동성 부족으로 지급 불능 상태에 처해 있다”고 했다. 2011년 연말 기준으로 헝다의 자본은 350억 위안(약 6조413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레프트는 헝다가 최소 여섯 가지 회계 부정을 저질렀고,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오히려 360억 위안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헝다가 토지를 싸게 매입하기 위해 지방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뇌물을 줬다는 주장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헝다는 2006년 이후 5년간 자산 규모가 23배나 늘어났는데, 이는 동종 업계에 비해 5배나 빠른 성장세였다. 레프트는 보고서에서 “헝다가 지방정부에 뇌물을 제공해 동종 업계에 비해 67%나 할인된 가격으로 광대한 토지를 매입했기 때문에 이 같은 성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 헝다가 중국의 유휴토지법을 무시한 채 무분별한 토지 개발을 하고 있어 중국 정부가 규제를 시행할 경우 토지를 반환하고 막대한 벌금까지 내야 할 것이라 전망했다.

쉬자인(許家印) 헝다 회장의 방만한 경영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레프트는 “쉬 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던 프로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우스울 정도로 전략이 없고, 끔찍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예컨대 헝다가 운영하던 남자 프로축구팀 광저우헝다(현 광저우FC)는 선수 연봉으로 연간 4억8800만위안(약 895억원)을 썼는데, 이는 리그 평균의 7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레프트는 “헝다의 비즈니스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심각한 스트레스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경영진은 회사의 위태로운 재무 상황을 은폐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헝다는 투자자 미팅을 열어 “회사의 현금 흐름은 양호한 상태”라며 레프트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레프트 “공매도 중요성 보여주는 사례”

홍콩 증권 당국은 당시 레프트의 주장이 허위이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헝다는 부채 규모가 3000억달러(약 355조7400억원)에 달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레프트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 나는 헝다가 부채에 어떻게 느슨하게 대처하는지, 재무 건전성을 위장하기 위해 어떻게 공격적인 회계를 사용하는지 보고서에 썼다”며 “이제 내가 쓴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고, 중국인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올해 초 게임스톱 사태 때 개미들의 반격을 받아 큰 손실을 본 레프트는 더 이상 공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헝다 사태로 공매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됐다고 레프트는 주장했다. 그는 “이번 일로 대가를 치르게 된 건 헝다를 믿었던 가난한 노동자와 시민들”이라며 “이는 시장에서 언론의 자유와 공매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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