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주식에 입문한 직장인 양모(35)씨는 지난 20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얼마 전에 산 넷플릭스 주가가 3%가량 상승 마감한 것을 주식 거래 앱으로 확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더니 주식 게시판에서 “넷플릭스가 폭락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확인해 보니 장 마감 후 거래(애프터마켓·after-market)에서 주가가 20% 넘게 폭락 중이었다. 김씨는 “사실 ‘주린이’라 시간 외 거래라는 게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며 “이러면 장이 끝나도 24시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주가가 떨어져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폭락세는 다음 날 정규장으로 그대로 이어져 20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주가는 35% 곤두박질쳤다.
흔히 주식시장이라고 하면 오전 9시~오후 3시 30분(미국은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열리는 정규장을 떠올린다. 그런데 정규장이 아닌 시간에도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이때 이뤄지는 거래를 시간 외 거래라고 한다. 미국은 정규 시간 외에도 종일 거래를 할 수 있다. 국내 증시는 오전 8~9시, 오후 3시 30분~6시에 시간 외 거래가 이뤄진다. 그런데 시간 외 거래 비율이 갈수록 커지면서 거꾸로 정규장을 뒤흔드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실적 발표일엔 주요 대형주의 시간 외 거래 비율이 80~90%에 달해 ‘정규장 무용론’이 나올 지경이다.
◇똑똑해진 개미, 뉴스 보고 즉각 반응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2019년만 해도 미국 증시에서 시간 외 거래로 매매되는 주식 수는 하루 평균 약 3억8400만주였다. 규모는 해마다 늘어, 2020년에는 5억7700만주, 지난해에는 6억9400만주를 기록했다. 전체 주식 거래에서 시간 외 거래의 비율도 2019년 1분기 1.26%에서 지난해 1분기 7%가 돼 여섯 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실적 발표일에는 시간 외 거래에서 매매되는 주식이 정규장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시가총액 1위 애플의 경우 평소에는 정규장과 시간 외 거래 비율이 7대3이지만, 실적 발표일에는 1대9로 역전된다.
시간 외 거래가 증가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대부분 기업의 실적이 정규장 종료 후 발표되고, 투자자들이 갈수록 실적에 민감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서학개미 같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가세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간 외 거래 중에서도 특히 새벽 시간의 개장 전 거래(프리마켓·pre-market)가 급증했다는 사실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2019년만 해도 주식시장이 시작하기 직전인 오전 8시~9시 30분 이전이 전체 시간의 48%를 차지했다. 오전 7시 이전에 이뤄지는 거래 비율은 4%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7시 이전 거래가 16%를 넘어섰고, 특히 새벽 4~5시에 이뤄지는 거래는 1.3%에서 7.9%로 크게 늘었다.
미국 동부 시각으로 오전 7시는 한국 같은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오후 8시에 해당한다. 경제나 국제 뉴스를 충분히 접하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이다. 조 고론스키 로젠블라트증권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에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등) 미국의 대형 기술주는 외국에서 상당히 인기가 꽤 높다”며 “외국에 있는 주식 투자자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시간에 실시간으로 기업 관련 뉴스를 접하며 미국 주식을 사고판다”고 말했다.
‘레딧’처럼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를 통해 지난해 밈 주식(온라인 주식 커뮤니티 등에서 소문이 나며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끄는 주식) 열풍을 이끈 미국 개미들이 시간 외 거래에 활발히 나서고 있는 것이다. 뉴욕 증권거래소 스테파노스 바지나스 전략가는 “게임스톱 같은 밈 주식을 탄생시킨 커뮤니티야말로 시간 외 거래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개미들이 똑똑해지면서 미국뿐 아니라 국내 증시에서도 시간 외 거래가 증가하는 추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간 외 거래액은 2019년 371억원에서 지난해 1747억원으로 급증했다. 박상진 삼성증권 글로벌주식영업팀 수석은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실력이 높아지면서 한국과 미국 증시를 가리지 않고 시간 외 거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증시의 경우 시간 외 거래는 정규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이 이용하는 증권사 중에는 미국 주식 시간 외 거래가 막혀있는 곳들이 있다. 국내 증시는 시간 외 거래와 정규장 거래 방식이 다르다. 장전 거래는 전일 종가로 매매가 이뤄지거나(동시호가 방식), 주식을 보유한 매도자가 사전에 자신의 주식을 사들일 매도자를 구해 넘기는 블록딜 방식으로 이뤄진다. 장 마감 후 거래는 장전 거래에서 쓰이는 두 가지 방식 외에 시간 외 단일가 방식도 적용된다.
◇출렁이는 주가에 멀미 날라
시간 외 거래는 기업 실적 발표와 같은 이슈에 즉각 반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가 변동성이 정규장에 비해 크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령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전날보다 3.3% 하락한 채 정규장을 마감한 다음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예상치를 밑돌았으나 페이스북 사용자가 예상보다 늘었다는 발표가 호재로 받아들여져 메타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20% 급등했다. 반대로 아마존은 28일 4.7% 상승으로 정규장을 마감했으나 장 마감 후 실망스러운 실적이 발표되자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가 10% 넘게 떨어졌다.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가 유독 요동치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실시간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래 물량이 적은 것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박상진 삼성증권 수석은 “시간 외 거래량이 늘었다고는 해도 정규장에 비하면 10%도 되지 않는다”며 “거래량이 적으니 주가가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른바 ‘작전 세력’이 시간 외 거래에 뛰어드는 것도 주가 변동성을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간 외 거래는 여러 변수가 많다 보니, 단순히 뉴스만을 접하고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