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서울 강남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가 내놓은 한정판 세트 ‘DCS컴펜디움’ 25병이 5억원에 낙찰됐다. 국내 위스키 단일 경매 기준으로 역대 최고가 기록이다. 2019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는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의 ‘파인앤드레어 1926년’ 60년산이 150만파운드(약 25억원)에 팔려 세계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고급 주류인 위스키가 부유층 사이에서 주요 투자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40도 넘는 증류주여서 상할 염려가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유의 향이 깊어진다는 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희소성 높은 재화로 각광받는 것이다. 스위스 프라이빗뱅킹(PB) 줄리어스 베어 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초부유층이 가장 많이 구매한 품목은 위스키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27.4%나 됐다. 와인과 자동차 구매가 각각 9.5%, 26.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희귀 위스키를 아예 통째로 매매하는 거래도 성행하고 있다. 지난해 맥캘란 1998년산 캐스크(술 담는 오크통) 한 통이 약 14억원에 팔렸고, 올해 여름에는 아드벡 싱글몰트 1978년산 캐스크 한 통이 익명 아시아 여성에게 1600만파운드(약 258억원)에 직거래 방식으로 판매됐다. 구매자는 향후 5년간 매년 700ml 위스키 88병씩 총 440병을 받게 된다. 한 병당 3만6000파운드(약 5815만원)를 지불한 셈이다. 유명 제품은 심지어 위스키 빈 병까지 인테리어 목적으로 수십만~수백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명욱 교수는 “거액을 들여 오랜 역사와 전통이 담긴 위스키의 시간을 사들이는 것”이라며 “워낙 귀하고, 찾는 이는 많은데 공급이 매우 제한적이라 가격 방어도 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부유층 자금이 몰려들자 투자 실적도 고공 행진 중이다. 영국 컨설팅 업체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주요 명품 가운데 희귀 위스키의 수익률은 428%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고급차(164%)나 와인(137%), 시계(108%), 가방(78%) 등의 수익률을 압도한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20년 홍콩에서는 30년 이상 된 위스키 또는 15~40년짜리 위스키 캐스크에 투자하는 펀드가 출시돼 2480만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에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를 통해 위스키 진품을 보증하고, 실물 인도 등의 과정 없이 온라인에서 매매가 가능한 전용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거래 편의성이 높아지면서 일반인들의 투자 참여도 크게 늘고 있다. 영국,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공모 위스키 펀드가 출시되기도 했다.
경기 침체 우려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도 희귀 위스키 시장 과열에 한몫했지만, 일반인들은 투자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 대비 정보가 제한적인 데다 가격 예측성이 떨어져 투자 위험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위스키 분야는 투자자가 여러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여서 한순간에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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