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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객사 세 곳이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브로드컴과 함께 만들) 맞춤형 인공지능(AI) 칩을 개발하기 위한 여정을 막 시작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혹 탄(Tan)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 올해 4분기(회계연도 기준) 실적 발표회에서 던진 이 같은 말이 AI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었다. 지금껏 빅테크 기업들은 AI의 핵심 기반 시설인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쓰는 것을 상식처럼 여겼다. 그런데 브로드컴의 AI 가속기인 XPU(eXtreme Processing Unit)가 대항마로 급부상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탄 CEO가 언급한 세 곳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구글, 메타, 바이트댄스로 확인됐다. 이로써 엔비디아 GPU의 독점적인 지위에 균열을 내기 위한 ‘XPU 동맹’이 탄생한 셈이다.
브로드컴은 이날 “2027년 한 해에만 XPU 관련 매출이 600억~900억달러(약 88조~13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올해 122억달러 수준이었던 AI 관련 매출이 3년 후에는 올해 브로드컴 전체 매출 516억달러를 뛰어넘게 될 것이란 뜻이다. 실적 발표 다음 날인 13일 브로드컴 주가는 24.4% 올랐고, 시가총액은 1조달러를 넘어섰다. 브로드컴은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를 따돌리고 전 세계 시가총액 9위로 뛰어올랐다. WEEKLY BIZ는 브로드컴의 4분기 실적 발표회 녹취록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연간보고서(10-K), 회사 소개 발표 자료 등을 통해 브로드컴의 잠재력을 분석해봤다.
◇AI 반도체가 성장 이끈다
브로드컴은 앞으로 AI 반도체 관련 매출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본다. 지난 4분기 전체 반도체 관련 매출은 82억달러로 한 해 전 같은 기간(73억달러) 대비 12% 늘었는데, 같은 기간 AI 반도체 관련 매출은 3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150% 증가했다. 내년 1분기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탄 CEO는 실적 발표회에서 “내년 1분기 반도체 관련 매출이 한 해 전과 비교해 10%가량 늘어날 때 AI 반도체 관련 매출은 65% 뛸 것”이라고 했다.
브로드컴은 2027년 AI 가속기 관련 매출이 한 해 최대 900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탄 CEO는 “(구글·메타·바이트댄스 등) 세 곳의 고객사가 각각 XPU 100만개가 장착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XPU 관련 매출이 크게 늘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기존 세 곳의 고객사에 더해) 두 곳의 고객사가 자체적인 AI XPU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와 협력하기로 했다”며 “2027년 전엔 (이와 관련한) 매출이 발생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브로드컴은 연간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 대한 우려도 담았다. 브로드컴은 “일부 반도체 기업들은 다른 경쟁사와 합병하거나 인수됐고, 또 다른 기업들도 서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러한 통합의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브로드컴은 연간보고서에서 반도체 기업 중 33개 회사를 자신의 경쟁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경쟁자 목록엔 엔비디아나 AMD, 퀄컴 같은 미국 기업이 다수였지만, NXP(네덜란드), 미디어텍(대만), 르네사스(일본) 등 유럽·아시아 기업도 일부 포함됐다. 한국 기업은 없었다.
◇연구·개발에도 꾸준히 투자했다
브로드컴은 내년 상반기에 차세대 모델인 3나노미터(nm·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XPU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내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고객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브로드컴은 개별 XPU와 관련한 기술 이외에도 데이터센터 내부의 네트워크를 연결할 때 필요한 ‘토마호크’나 ‘제리코’란 이름의 반도체를 꾸준히 개량해 관련 기술력도 갖췄다는 평이다.
브로드컴은 연구·개발(R&D)에도 투자를 이어가며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올해 R&D에 93억1000만달러를 썼는데, 이는 지난해(52억5300만달러)보다 77.2% 늘어난 수치다. 브로드컴은 이달 업데이트한 회사 소개 발표 자료에서 “브로드컴은 반도체 기업 중 가장 광범위한 지식재산권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가 보유한 특허권만 2만1000여 개”라고 밝혔다.
◇M&A로 지평을 넓힌다
브로드컴은 인수·합병(M&A)이 여전히 회사의 중요한 성장 전략이라고 했다. 탄 CEO가 이끄는 브로드컴은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M&A를 성공시키며 회사 주가를 끌어올려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번 실적 발표회에서도 탄 CEO는 “10년간 M&A는 이 회사의 핵심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였다”며 “우리의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반도체든 소프트웨어든 훌륭한 자산(인수 대상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브로드컴은 지금껏 M&A를 통해 반도체 이외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브로드컴은 2017년 네트워크 장비 기업 브로케이드를 인수했다. 이어 2018년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CA 테크놀로지스, 2019년 소프트웨어 기업 시만텍의 보안 사업부를 사들였다. 지난해엔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기업인 VM웨어를 품었다.
◇미·중 갈등의 심화는 걱정거리다
미·중 무역 분쟁의 심화는 브로드컴의 걱정거리다. 미국 빅테크 기업에도 거대한 중국 시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되는 건 큰 손해다. 브로드컴은 연간보고서에서 “보호무역주의의 심화와 관세 인상이 이어지면 우리의 사업 능력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보복 관세 때문에) 중국 기업과 제대로 경쟁하기 어려워지거나, 아예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소수의 고객사에 매출이 집중돼 있다는 점도 브로드컴을 불안하게 만든다. 브로드컴은 “올해 한 해 동안 전체 매출의 40%가량이 고객사 다섯 곳으로부터 발생했다”고 했다. 이런 ‘큰손’ 고객 중 일부를 놓쳤을 때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브로드컴 입장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다. 브로드컴은 “우리의 주요 고객들은 막대한 구매 규모를 바탕으로 가격 책정이나 구매 조건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해올 수 있다”며 “또한 일부 고객은 자체적으로 제품 생산에 나서면서 구매를 아예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주주 환원에도 힘쓴다
브로드컴은 AI 반도체 부문의 가파른 성장으로 주가도 많이 올랐지만, 주주 환원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연간보고서 등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올해 한 해 동안 주주 환원에 222억달러를 썼다. 이 중 98억달러를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했고, 나머지 124억달러는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에 사용했다.
브로드컴은 배당금을 가파르게 늘려나가고 있다. 2016년에는 연간 주당 배당금이 0.19달러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11달러까지 늘었다. 브로드컴은 “내년에는 베당금을 주당 2.36달러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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