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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이 미국의 비만 인구 증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제가 백악관에 돌아가면 미국의 망가진 식품 시스템을 고치고,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겁니다.”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란 슬로건을 내걸고 미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초가공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냉동피자, 시리얼 등 식품 산업화를 통해 생겨난 음식이 미국을 병들게 하고 있으니 이런 식품을 미국의 식탁에서 퇴출시키겠단 것이다. 케네디 주니어는 “우리에겐 ‘유독성 수프’에서 헤엄치는 한 세대의 아이들이 있다”며 초가공식품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왔다. 그렇다면 초가공식품은 어떤 식품을 말하고, 몸에는 얼마나 해로울까. WEEKLY BIZ가 다섯 가지 질문으로 분석해봤다.
◇1. 초가공식품은 무엇인가
초가공식품이란 과자, 컵라면, 탄산음료, 냉동 피자 등 가공 정도가 특히 높은 식품을 가리킨다. 브라질의 공공 건강 연구자인 카를로스 몬테이로 박사 연구팀은 2009년 식품의 가공 정도에 따라 식품을 1~4군으로 나누는 ‘노바(NOVA)’ 분류법을 마련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인류의 식습관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식품 분류법이다.
이에 따르면 1군은 비가공 또는 최소 가공식품을 말한다. 자연 그대로의 육류·어류나 채소·과일을 그대로 먹는다거나, 이를 씻고 못 먹는 부분만 제거한 정도까지만 1군 식품이다. 달걀, 저온살균 우유, 신선·냉동 육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2군은 천연 식품에 압착·정제·도정·건조 등의 공정을 거쳐 추출한 제품이다. 설탕, 소금, 버터, 식용유 등이 대표적이다. 3군은 가공식품이다. 보통 1·2군 음식을 두세 가지 합쳐 만든 음식을 말할 때가 많다. 과일·채소 통조림, 소금이나 설탕에 절인 견과류, 치즈 등이 해당한다.
가장 가공을 많이 한 4군은 초가공식품이라 부른다. 향료, 착색제, 유화제 등 식품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압출·변형·튀김 등의 공정을 거치고, 맛을 내기 위해 색소·인공 첨가물·감미료·방부제 등이 다량 들어간다. 원재료 식품의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다. 과자, 탄산음료 등 다양한 간편식이 초가공식품으로 분류된다.
특히 최근 초가공식품의 매출은 간편식을 원하는 소비 트렌드와 식품 대기업의 마케팅이 맞물려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테크나비오는 2023년부터 5년 동안 초가공식품 시장 규모가 연간 8~9%씩 성장해 5947억1000만달러 더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 초가공식품, 왜 살찌게 하나
대체로 초가공식품은 열량이 높기 때문이다. 에너지바를 예로 들어보자. 에너지바는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수분을 제거하고 에너지 밀도를 높여 같은 무게의 음식이라도 칼로리가 더 높다. 여기에 온갖 첨가물을 더해 만들어지는 초가공식품은 입맛을 당기게 하고, 이는 술(알코올 중독), 담배(니코틴 중독)처럼 중독을 일으킨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자꾸 초가공식품을 끊임없이 입에 집어넣는 이유다.
초가공식품이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실험도 있다. 2019년 미 국립보건원(NIH) 선임 연구원인 케빈 홀 박사 연구팀은 20명의 성인을 둘로 나눠 한쪽은 2주 동안 초가공식품 위주로 먹게 하고, 다른 한쪽은 자연식품으로 만든 식단을 따르게 했다. 이후 추가 2주 동안엔 참가자들이 원하는 만큼 음식을 먹도록 해봤다. 이렇게 한 달의 임상 시험이 끝난 뒤 차이는 확연했다. 첫 2주 동안 가공식품을 먹은 참가자들은 체중이 평균 900g 늘어난 반면, 자연식품을 먹은 참가자는 체중이 900g 줄었다. 가공식품을 먹은 집단에서 더 많은 칼로리를 먹은 데다, 자극적인 맛에 음식을 더 먹고 싶은 유혹을 느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3. 에너지 과잉 섭취만 문제인가
초가공식품에 대해 ‘유독성 수프’란 비유까지 등장한 이유는, 초가공식품이 과잉 섭취뿐 아니라 각종 질병까지 유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린 ‘초가공식품 노출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란 논문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심장 질환, 정신 건강 장애, 제2형 당뇨병(인슐린은 분비되지만 혈당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병) 등 32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초가공식품을 먹으면 얼마나 수명을 단축시키는지 계산한 연구도 있다. 미시간대 연구팀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식품 5853개의 인기 순위를 매기고, 가장 인기 있는 초가공식품 다섯 가지를 1회 먹을 때 얼마나 수명이 줄 수 있나 계산했다. 식품 첨가제, 지방, 칼로리, 설탕 등 첨가물에 따른 건강 영향을 분석한 결과다. 그 결과 핫도그는 36분, 절인 가공육은 24분, 탄산음료는 12분, 치즈버거는 9분, 베이컨은 6분의 수명을 단축했다.
초가공식품은 특히 아동·청소년에 끼치는 악영향이 큰 편이다. 지난해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높은 상위 3분의 1 그룹의 아이들은 하위 3분의 1 그룹의 아이들에 비해 지방간 위험이 1.75배, 인슐린 저항성 위험이 2.44배 높았다.
◇4. 마트에서 초가공식품을 확인하는 방법은
전문가들은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려면 장을 볼 때 제품 뒷면의 표기를 자세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마리온 네슬레 뉴욕대 영양·식품·공중보건학 명예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증점제(식품의 점도를 높여주는 물질), 유화제, 설탕 대체물, 합성 식용 색소, 인공 향료 등 일반 가정의 주방이나 식료품점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성분이 초가공식품을 만든다”며 “만약 성분표에서 모르는 성분을 발견하면 그 식품은 초가공식품일 수 있다”고 했다.
초가공식품을 거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천연’ ‘식물성’ 같은 건강에 좋아 보이는 단어가 있다고 해당 제품이 초가공식품이 아니진 않다는 것이다. 조시머 마테이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채소 버거나 채식주의자용 냉동식품에도 초가공식품을 만드는 성분이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5. 초가공식품을 모조리 피할 수 있나
현대 사회에서 초가공식품을 아예 안 먹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일부 1차 농축수산물을 제외하곤 대부분 먹거리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황이라서다. 실제 NIH는 미국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58%를 초가공식품으로 섭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초가공식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막강한 로비력을 가진 대기업들이라서 정부 주도 퇴출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먹거리가 초가공식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이를 기피하는 것은 그나마 좋은 영양소를 섭취할 기회도 잃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발레리 설리번 존스홉킨스대 박사는 “초가공식품에는 귀중한 영양소가 포함돼 있는 경우도 많아 모든 초가공식품 섭취에 대해 전면적인 규제를 가하는 건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다. 통곡물 식빵에 유화제가 들었다고 해서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는 통곡물 식빵까지 포기하진 말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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