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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도쿄국립박물관이 개관한 지 150주년 된 해였다. 이를 기념해 ‘국보로 보는 도쿄국립박물관의 모든 것’이란 특별전이 그해 10월 중순에 열렸다. 박물관이 보유한 국보는 총 89점. 이를 전시 기간에 모두 공개했다. 1기와 2기로 나눠 전시했지만, 150년 역사상 처음이었기에 박물관 관계자들은 기념비적 전시라 자부했다.

그때부터 2주 후, 또 다른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150년 후의 국보전: 나의 보물, 미래의 보물’이란 제목으로, 개관 300주년이 되는 2172년엔 어떤 것이 박물관에 전시될지 상상하는 전시였다. 선정 방식도 독특했다. 박물관 설립 이래 최초로 공모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기업과 개인이 참여해 150년 후의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은 제품과 기록을 출품하는,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전시였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이 선정됐을까. 고질라, 다마고치, 헬로키티, 세븐일레븐 등 한순간의 유행을 넘어 문화를 바꾸고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한 것이 주류를 이뤘다. 무엇보다도 가장 전통적인 공간이어야 할 국립박물관에서 이러한 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도쿄 국립박물관에선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24일까지 헬로키티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은 박물관에 대형 헬로키티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신현암 팩토리8 대표

시간이 흘러 2024년, 헬로키티가 탄생 50주년을 맞이했다. 캐릭터의 천국답게 일본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가 열렸음은 당연지사. 그런데 도쿄국립박물관에서도 헬로키티 50주년 전시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긴 2년 전 공모형 전시를 진행한 박물관이니 이 정도 융통성은 당연해 보였다. 헬로키티의 위상은 대단하다. 50년간 매출 800억달러(약 116조원)를 올렸고 유니세프 홍보 대사, 일본 외무성 특사를 지내기도 했다.

50년은 긴 시간이다. 헬로키티의 디자인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럼에도 ‘리본을 달고 있고, 입이 없다’는 원칙은 여전히 지켜졌다. 비즈니스 면에서도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다. 나이키, 맥도널드부터 기동 전사 건담, 고슴도치 소닉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헬로키티는 사랑받아 왔다. 이런 내용이 전시돼 있으니, 헬로키티 팬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MZ 세대 관람객들은 빠르게 전시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은 후 기념품 매장으로 이동했다. 반면 연령대가 높은 관람객들이 유독 몰린 공간이 있었다. 바로 국보와 협업한 작품들 앞이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우키요에(일본 풍속화) 작가다. 그의 후지산 36경 작품 중 하나인 ‘가나자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훗날 드뷔시가 ‘바다(La Mer)’를 작곡할 때 영감을 줄 정도였다. 원작에서는 거대한 파도에 휘둘리는 나룻배가 몇 척 등장하는데, 이번 협업 작품에서는 노를 젓는 헬로키티가 추가돼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키요에의 창시자라는 히시카와 모로노부의 ‘뒤돌아보는 미인’도 색다르게 재해석됐다. 이 작품은 화면 왼쪽으로 걸어가던 소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을 그린 것으로, 그녀가 입고 있는 벚꽃과 국화 무늬 긴 소매 기모노는 당시의 패션을 보여준다. 협업 작품에서는 헬로키티가 같은 문양의 옷을 입고 반갑게 뒤를 따라가고 있어 흥미를 더했다.

국보를 이렇게 활용하는 도쿄국립박물관의 기획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만큼 관람객이 늘고,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커질 터이니 말이다. 도서관이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고 즐기는 곳이자 대중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박물관도 문화재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대중이 찾아와 문화를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도 최근 ‘합스부르크전’ ‘비엔나 1900전’ 등으로 관람객을 많이 끌어들었다. 좀 더 다양한 전시로, 더 많은 사람이 방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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