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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전 세계 가상 화폐 투자자들의 관심은 지난 4일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한 기자회견에 쏠렸다. 지난달 20일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공지능(AI)·가상화폐 정책을 총괄할 ‘차르’로 임명된 데이비드 색스가 트럼프가 펼칠 가상 화폐 정책의 방향성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회견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가상 화폐는 비트코인도 이더리움도 아닌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을 ‘미국 달러’ 같은 특정 국가의 화폐 가치에 사실상 고정하도록 한 가상 화폐다. 이날 색스는 기자회견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잠재적으로 수조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수요를 창출해 장기 금리를 낮출 수 있다”면서 스테이블 코인의 기능과 장점을 소개하는 데 상당 시간을 소비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무엇이고, 미 국채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WEEKLY BIZ가 다섯 문답으로 정리했다.

◇1. 스테이블 코인이란 뭔가

스테이블 코인이란 영어 단어 스테이블(stable·안정적인)의 의미처럼 가격이 안정되게 설계된 가상 화폐를 말한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코인 하나 가격이 ‘1달러’처럼 특정 국가 화폐 가치로 유지되는 가상 화폐라고 보면 된다. 미국 달러의 가격을 따라가도록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이 대부분이다. 가상 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소속 바이낸스리서치는 “유로화 기반 EURC와 금을 기반으로 하는 테더 골드(XAUt) 같은 스테이블 코인도 있지만 아직 그 규모는 미미하다”고 했다.

가상 화폐의 가격이 안정된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이 널뛰는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 화폐에 비해 결제 수단으로 쓰기 좋다고 평가된다. 한편 일각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들쭉날쭉하기 마련인 가상 화폐의 가격을 달러 등에 고정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픽=김의균

◇2.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을 어떻게 유지하나

가격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거래되는 스테이블 코인에 맞춰 진짜 ‘돈’을 비축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달러어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면 ‘진짜 돈’ 1달러를 사서 금고에 넣어둔다. 언제든 1코인을 1달러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가격을 유지하는 셈이다. 다만 실제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전체 스테이블 코인 가치만큼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준비금을 마련하지 않고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통한 ‘알고리즘’ 방식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운영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개발한 스테이블 코인 테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테라와 이 가격을 뒷받침하는 ‘위성 코인’인 루나 가격의 연쇄 폭락으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테라 사태’ 이후 알고리즘 방식에 대한 신뢰는 붕괴했고 각국 규제 당국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반드시 실제 화폐를 보유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꿔가고 있다.

◇3. 스테이블 코인의 규모는 얼마 정도인가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의 지난 7일 기준 시가총액은 1412억달러(약 205조원)다. 비트코인(1조9331억달러)·이더리움(3282억달러)에 이어 셋째로 크다. 다른 달러 스테이블 코인인 USDC도 시총 7위(563억달러)였다. 가상 화폐 기업 파이어블록스의 에이미 장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전체 스테이블 코인의 시총은 지난해에만 56% 늘면서 2000억달러를 넘겼다”고 했다.

스테이블 코인이 빠르게 성장한 이유는 그만큼 쓸모가 많아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와 가치가 같기 때문에 다른 가상 화폐를 사기도 용이하고, 탈(脫)중앙 방식의 거래·대출·보험 등 ‘디파이(DeFi)’ 금융 서비스에 활용하기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무역 대금 지급이나 해외 송금 기능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장 대표는 “은행을 이용해 해외 송금을 하려면 송금 수수료도 많이 내야 하고 실제 정산까지 여러 날이 걸린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을 이용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돈을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단 몇 초로 줄어든다”고 했다.

◇4. 미국 ‘가상 화폐 차르’가 국채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식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존의 미 국채 ‘큰손’이었던 중국이 미·중 분쟁 여파로 미 국채를 대거 시장에 내다 팔면서 일어난 일이다. 중국의 대만 압박 등 비상사태가 터질 경우 미국이 (미 국채 등) 중국 보유 달러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중국의 미 국채 매도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2021년 말 1조403억달러였던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022년 말 8671억달러로 한 해 만에 16.6% 쪼그라들었다.

중국이 내다 파는 미 국채를 누군가 사주지 않으면 국채 가격은 하락(국채 금리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미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를 이렇게 시장에 나오는 국채를 대거 흡수할 ‘제2의 큰손’으로 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앞서 설명했듯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발행사는 달러를 사서 보유하는 방법을 쓴다. 그런데 달러 대신 미 국채를 사서 보유해도 문제는 없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내다 팔기 쉽고 부도 위험이 사실상 ‘제로’인 미 국채는 달러와 동등한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미 국채를 이미 보유 중이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더 키워 발행사가 미 국채를 많이 흡수하도록 하면 중국의 미 국채 매도로 인한 충격을 줄일 수 있다.

◇5. 스테이블 코인으로 국채 가격을 떠받칠 수 있을까

중국이 외면하는 국채를 누가 떠안을지는 사실 미 정부의 큰 걱정거리다. 막대한 재정 적자 때문에 국채를 계속 발행해야 하는데, 수요가 받쳐주지 못해 국채 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면 미 정부가 지급해야 할 이자 부담도 더불어 불어나는 탓이다. 스테이블 코인의 규모를 보면 실제로 미 국채 가격에 영향을 줄 정도로 ‘몸집’이 커진 상태인 것은 맞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의 발행사가 준비금 명목으로 보유한 미 국채는 지난해 말 기준 113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멕시코(1008억달러)나 독일(977억달러)이 보유한 미 국채보다 많다.

미국은 아예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쓰도록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일 미국 공화당 빌 헤거티 상원 의원이 발의한 ‘스테이블 코인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달러 현금, 예금 등과 함께 ‘만기 93일 이하 미국 국채’를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금리가 요동치더라도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지 않는 단기 국채를 많이 보유하게 된다. 코인베이스 관계자는 “위험 관리 차원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현금화가 쉽고 만기가 짧은 자산을 보유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한 규제”라고 했다.

미 국채의 가치가 흔들릴 경우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우려는 남는다. 더크 니펠트 스위스 베른대 교수는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가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를 뒷받침하더라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이나 채무불이행 위험 등은 불안 요소”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인 뱅크런처럼 일종의 ‘코인런’이 발생하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미 국채를 짧은 시간에 처분하는 과정에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리 아이컨그린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과거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때처럼 스테이블 코인 대량 매도 사태가 발생해 준비금을 청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국채 시장, 나아가 금융 시장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가격이 ‘1달러’처럼 미국 달러와 같은 특정 국가 화폐나 금 등으로 고정돼 있는 가상 화폐. 하나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동일한 가치의 화폐나 국채를 ‘준비금’으로 보유한다는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게 일반적이다. 다른 가상 화폐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아 무역 대금 결제, 국제 송금 등에 많이 활용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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