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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주장은 대부분 틀렸다.”
미 학계 통상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지난달 26일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에 대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관세로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고, 정부 재정 건전성과 무역 적자 문제까지 모두 해결하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며 “미국 경제 성장 동력만 깎아먹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군사적 동맹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까지도 공격 대상으로 삼으며 무역 전쟁 전선(戰線)을 확대 중이다. 미국은 4일 0시를 기해 캐나다·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상품에도 10% 추가 관세(기존 발표 10%에 더해 총 20%)를 매겼다. 유럽연합(EU)을 향해서도 25% 관세 ‘폭탄’을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는 관세가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키’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관세를 붙인 수입 제품이 비싸지면, 미국산 제품이 더 잘 팔려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관세 수입도 크게 늘면서 ‘트럼프표’ 감세 정책에 따른 세수 감소분을 메울 수 있고, 미국이 주요 무역 상대국에서 기록 중인 막대한 무역 적자 역시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하지만 어윈 교수는 트럼프의 이 같은 생각은 관세 외 금리·환율 등과 같은 다른 경제 변수를 깡그리 무시한 단선적 시선이란 지적이다. 어윈 교수는 연구와 저술 활동을 통해 자유무역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 온 학자다. 그가 2017년에 낸 책 ‘상업 충돌: 미 무역 정책의 역사’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무역 정책은 정치적”
-트럼프는 수입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예고한 상태다. 이런 조치가 미국 선거나 정치와도 연관이 있나.
“경제 정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무역 정책 역시 정치적이다. 철강 산업은 미국 내에서 매우 민감한 부문인데, 철강 산업이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두 주는 (선거 결과에 영향이 큰 경합주라)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승리하고 국민 지지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무역 정책에도 이런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다. 정치인 대상 로비도 무역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미국에선 매우 강력한 농업 관련 로비가 이뤄지는데, 이로 인해 설탕 산업이 무역 장벽으로 보호받는다.”
-한국도 일부 품목엔 관세를 높이 매기는데, 이 역시 정치적이란 뜻인가
“한국의 제조업 상품에 대한 관세는 4% 수준으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농산물을 포함한 1차 산업 상품에 대한 관세(2022년 기준 14.9%)가 높다. 쌀과 같은 식량의 공급원을 다양화하지 않고 (관세 등을 통해)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을 막는다면 이는 소비자에게 매우 큰 비용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한국은 (농업이 발달한) 주변국이 많아 굳이 모든 식량을 한국 내에서 생산할 필요가 없다. 결국 농산물에 대한 높은 관세는 유권자인 농민을 의식한 정치적인 결정인 경우가 많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면 관세 대신 취할 정책 수단은.
“경제학자들은 관세보다는 보조금 정책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관세 부과 없이 수입을 허용하는 대신 보조금을 더 지원한다면, 적어도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 물론 보조금을 주는 데 정부 예산을 투입해야 하기에 이 역시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관세 매겨 일자리 늘려? 효과는 ‘제로’”
어윈 교수는 자신의 책 ‘공격받는 자유무역’에서 관세가 일자리를 오히려 감소시키는 요인이라 지적한다. 트럼프의 주장과 180도 반대인 셈이다. 어윈 교수는 이를 설명하고자 미국 설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 장벽을 예로 들었다. 미국 제과 업체와 가공식품 업체는 높은 관세가 매겨진 설탕을 비싼 값에 수입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다 보니 수입 설탕을 쓰는 미국 업체에 원료값 상승이란 도미노 타격이 가해졌고, 가공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했다. 2006년 미국 상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설탕 가격이 이전 25년 동안 글로벌 가격의 2~3배에 달했다는 점을 지적한 뒤 “이러한 가격 차이로 미국 내 설탕 정제 및 설탕이 들어가는 식품 제조 업체 일자리가 1만1100개 이상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관세를 통해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돌아오게 만들겠다”고 한다. 가능할까.
“나는 (관세 정책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알루미늄·철강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그들은 이 조치로 (미국 내)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Alcoa)는 (관세 부과에 따른 수입 알루미늄 가격 상승 탓에) 직간접적으로 최대 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철강 산업에서의 일자리 증가 효과도 미미하다고 본다. 일자리가 일부 증가할 순 있지만, 현대 철강 생산은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 매우 자본 집약적으로 이뤄진다. 블루칼라 노동자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철강 분야 일자리가 기대만큼 많이 늘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철강 원재료를 쓰는 산업, 예컨대 트랙터 등 중장비를 만드는 기업 캐터필러 같은 기업 등엔 (철강 원료값이 올라) 오히려 피해일 수 있다. 관세는 제조업 전체를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특정 부문엔 이익을 주고, 다른 부문엔 손해를 끼친다. 결과적으로 순(純) 일자리 증가 효과는 거의 ‘제로(0)’에 가깝다고 본다.”
-자유무역으로 중국의 싼 제품이 밀려 들어오면서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의 저숙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주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자유무역’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는지 ‘기술 변화’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는지 두 가지를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먼저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수입품이 가져온 충격으로 특정 산업이 영향을 받아 실업이 발생할 순 있다. 그러나 이런 충격은 흔하지 않다. (중국 상품의 유입으로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가 대량 감소한) ‘차이나 쇼크’는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사실 지금껏 제조업 일자리를 감소시킨 건 기술 변화의 영향이 컸다. 50년 전 기아차·현대차 공장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 봐라. 오늘날엔 대부분이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한다.”
◇“세수 증대나 무역 적자 해소 어려워”
-트럼프는 자국 법인세 등을 감면하는 대신 관세 수입으로 모자란 세금을 벌충한다고 한다. 가능할까.
“관세 수입이 일부 증가해 (미국 내) 세금 감면에 따른 비용을 부분적으로 상쇄할 수는 있겠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이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졌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 기간 약속한 것처럼 중국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모든 국가에 10% 관세를 부과해도 미국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관세 수입은 연간 최대 2000억달러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감세 계획에 따른 세수 감소분(10년간 5조달러)에 비해 턱없이 작다.
-미국은 무역 적자가 크다. 이는 달러가 글로벌 기축통화라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봐야 하나.
“그렇다. 미국 내에서도 이에 대해 논쟁이 있지만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글로벌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이로 인한 달러 강세로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나) 무역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만약 달러 자산의 인기가 식으면 상황이 좋아질까. 그렇지 않다. 전 세계가 미국 자산을 보유하지 않으려는 상황이 닥치면, 미국 정부나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에 시장 금리가 오르고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달러 가치 하락으로) 무역수지는 일부 개선될 수 있겠으나, 경제가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결국 미국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을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 정책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0.2~0.4% 줄일 수 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 성장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기적으로는 0.2%가 작은 숫자로 보이겠지만 손실이 누적되면 10년 후엔 그 손해가 더욱 커질 것이다. (당장) 경기 침체가 일어나진 않더라도 미국 경제엔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어윈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관세는 환율이 고정돼 있고, 다른 나라 정부가 보복 조치를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만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당장 중국 정부는 일부 미국 수입품에 15%까지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관세, 인플레이션 직접 유발 안 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주장들에도 허점은 있다고 어윈 교수는 지적한다. ‘관세 때문에 수입품 가격이 비싸져 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인플레이션은 유권자들을 돌아서게 만든다. 그래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자기 발등 찍기’라고 보는 사람이 많지만, 어윈 교수는 “관세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건 길어야 1년 정도 이어지는 ‘일회성’ 물가 상승”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수입품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을 다시 심화하지 않을까.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직접적으로 유발할 위험은 크지 않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은 지속적인 소비자 물가의 상승을 뜻한다. 그런데 관세는 특정 상품의 가격을 일회성으로 끌어올릴 뿐이다. 관세 부과 효과는 1년 정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영향을 주겠지만, 그 이후론 다시 안정을 찾는다.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구조적 인플레이션’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을 잡으려 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
-그래도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면, 미국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지 않나.
“그 부분은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막으면, 수입이 막힌 제품들의 미국 내 가격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수출하던 대두나 밀을 다른 나라가 수입하지 않으면, 미국 내부에 대두나 밀이 넘쳐나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무역 전쟁으로 일부 품목은 오히려 가격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무역 정책은 특정 상품의 상대적인 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전체 물가 수준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지는 않는다.”
◇트럼프 시대, 한국의 대응은
-한국도 트럼프의 관세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는 한국 정부가 트럼프 첫 임기 동안 비교적 잘 대응했다고 본다. 우선 한국은 백악관 외부에서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주 의회나 연방 의회의 상·하원 의원들, 그리고 미국 기업계와도 협력해 두 나라 경제 관계의 가치를 강조하는 노력이 주효했다. 또 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이 미국 내에 공장을 건설한 점도 매우 유용했다. 이렇게 하면 만약 관세가 오르더라도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FTA는 보호막이 되기 어려울까.
“(미국과 FTA를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부과를 추진한 상황을 봐라. 미국과 FTA를 맺어도 여전히 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만약 한국이 한미 FTA를 믿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면, 멕시코와 캐나다의 사례가 그 믿음을 흔들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통상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수출 대상국을 더 분산시키려는 노력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결성한 다자간 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미온적이었던 게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CPTPP 가입국과 대부분 FTA를 맺은 상태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농축산물 수입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농가의 반발을 의식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수출 중심 경제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나.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국가 및 지역과 양자 및 다자 FTA를 체결해 무역 네트워크를 다각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EU나 세계 여러 지역과 FTA를 체결해 다양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 무역 통계 사이트 유엔 컴트레이드에 따르면 2023년 멕시코 수출의 79.6%가 미국으로 향했는데, 이 비율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도 CPTPP 등에 가입해 무역을 다각화하고, 자유무역을 존중하는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더글러스 어원
미국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 미 학계에서 통상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2017년에 내놓은 책 ‘상업 충돌: 미 무역 정책의 역사’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피터슨 국제 경제 연구소(PIIE) 선임 연구원이기도 한 그는 박정희 정부의 무역·환율 정책 변화가 한국의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진 과정에 대해 다룬 보고서 ‘은둔의 왕국에서 한강의 기적까지’를 2021년 발표했다.
☞관세
국가 간 무역을 할 때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 보호무역 정책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관세를 수출국이나 수출 기업이 낸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수입하는 쪽에서 낸다. 통상 관세로 인해 늘어난 비용이 가격에 반영돼 수입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고, 소비자에게도 부담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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