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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김 과장님 미안해요. 팀장님께도 면목이 없습니다.” 14년 차 직장인 최모(40)씨는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날 삼겹살 저녁을 쏘며 팀원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내의 복직 날짜에 맞춰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는데 당장 팀이 가장 바쁠 때라 눈치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육아휴직자는 2023년 기준 19만5986명. 10년 전과 비교해 출생아는 절반으로 급감했는데, 육아휴직자는 8만명 넘게 늘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진 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 커뮤니티에선 ‘육아휴직은 정당한 권리니 눈치 볼 필요 없다’는 파와 ‘조직 내 상황도 감안해 휴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파가 온라인 혈전을 벌인다. 육아휴직자의 일을 누군가 대신 떠맡아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이 같은 논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에 WEEKLY BIZ가 육아휴직과 업무 분담을 둘러싼 직장인들의 생각을 물었다. 설문은 지난 6~7일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20~50대 직장인 1086명을 대상으로 했다.
◇내 동료의 육아휴직, 축하는 하지만…
설문을 통해 직장인들의 속마음을 분석해 보면 ‘내가 쓰는 육아휴직’은 눈치 보이고, ‘남이 쓰는 육아휴직’은 부담스럽단 분위기다. 이번 설문에서 ‘동료가 육아휴직하면 내 일이 늘어날까 걱정된다’는 직장인이 72.2%나 됐다. 서울 소재 중소기업 직장인 박모(39)씨는 “얼마 전 옆자리 직원이 임신했다고 하길래 축하한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앞으로 나만 더 고달파지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육아휴직자 자리를 대체 인력으로 채우기보단 남은 팀원들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61.4%가 ‘기존 팀원에게 육아휴직자의 일을 분배한다’고 답해, ‘대체 인력에게 맡긴다’는 대답(37.0%)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팀원에게 분배한다는 응답자 중 ‘회사가 추가 수당 등으로 보상한다’는 응답은 12.4%에 그쳤다. 대부분 직원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추가로 일거리만 떠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육아휴직을 쓸 때 동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설문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면 부담스러운 부분은 무엇인지’(복수 응답) 물었더니 “내 업무가 동료들에게 추가로 돌아가 미안하다”는 응답이 44.2%로 가장 많았다. 이어 회사나 상사의 부정적 시선(34.4%), 복귀 후 적응 어려움(34.0%), 급여 감소 등 경제적 부담(27.1%) 등의 답이 많았다.
대기업에 비해 빠듯한 인력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에선 육아휴직을 더 쓰기 어려웠다. 설문에서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대기업 직장인은 69.9%가 “그렇다”고 했지만, 중소기업 직장인의 응답률은 그 절반(37.8%)으로 뚝 떨어졌다. 한 살 아이를 키우는 중소기업 직장인 이모(41)씨는 “우리 회사는 마케팅 등 특정 업무를 한 사람이 도맡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오래 쉬기가 어렵고, 육아휴직을 쓴다고 말하면 사실상 퇴사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직원 1만명이 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누군가 육아휴직을 가더라도 다른 복직자가 생겨 빈자리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데다 다른 팀에서 사람을 받기도 쉬운 구조”라고 말했다.
◇육아휴직 ‘동료 수당’ 대안 될까
육아휴직자 업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전문가들이 권하는 최우선 방안은 대체 인력 채용이다. 다만 직종이나 직급에 따라 채용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휴직 기간과 딱 맞춰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다. 한 유통 기업 관계자는 “요샌 다들 아이를 늦게 낳기 때문에 육아휴직 대상자가 과장급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 직급을 계약직으로 메우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이른바 ‘동료 수당’을 지급하는 곳이 늘고 있다. 대체 인력을 쓰기 어렵다면 기존 팀원에게 보상해 주는 게 낫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올해부터 육아휴직자의 팀원들에게 각각 최대 50만원을, 롯데백화점은 남성 육아휴직자 업무를 대신하는 직원 3명에게 각각 최대 60만원을 준다. 정부 차원에서도 올해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동료 지원금’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에서 육아휴직자 업무를 대신 맡는 직원에게 추가 수당을 주면 정부가 월 최대 20만원까지 보조해 준다.
이런 동료 수당은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일본에서 먼저 도입된 바 있다. 예컨대 미쓰이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은 2023년부터 최대 10만엔(약 98만원)의 동료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삿포로맥주와 오키전기공업, 장난감 회사 다카라토미 등도 지난해부터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 국내 한 IT 대기업은 지난해 동료 수당 도입을 검토했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업무가 무 자르듯 나뉘는 게 아니다 보니 누구에게 지급할 건지 결정하기 어려웠고, 직원들 사이에서 ‘몇십만 원 더 받는다고 업무 책임을 떠안아야 하나’ 같은 지적도 나왔다”고 했다. 인사 컨설팅사 콘페리의 이종해 파트너는 “동기 부여 차원에서 보자면 적절한 금전적 보상과 더불어 인사 평가 등에서 확실한 이점을 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료 수당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대체 인력 제도를 개선하거나, 과도한 근로 시간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육아휴직자만 혜택 받고 나는 손해 본다’ 같은 낙인을 없애려면 누구나 유연 근무제를 쓸 수 있는 근로 환경 등 더 근본적인 개선을 같이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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