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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에서 1955년에 만든 일본 최초의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TR-55의 모습./소니 홈페이지

올해는 일본에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내에선 정보 전달 미디어에 대한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도쿄방송국(현 NHK 도쿄방송국)에서 도쿄 시바우라 지역의 도쿄고등공예학교에 가설 스튜디오를 설치했다. 1925년 3월 22일 오전 9시 30분 라디오를 통해 “아, 아, 들리시나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당시 라디오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청취 범위는 도쿄 중심지인 23구(區) 정도. 이후 오사카·나고야에도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라디오 수신자 수가 6개월 만에 10만명, 1년 만에 20만명으로 늘어났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국민은 라디오를 통해 종전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방송은 충격적이었다. 항복했다는 사실 자체도 그러했지만, 천황의 목소리를 일반인이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라디오 하면 소니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1950년대 초반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은 벨 연구소가 1947년에 개발해 특허를 갖고 있는 트랜지스터 기술 사용권을 얻기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몇 번의 협상 끝에 소니는 라이선스 취득에 성공했다. 보청기 정도를 만들 줄 알았던 벨 연구소의 예상을 깨고 소니는 1955년에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었다. 당시 기술로는 진공관 기반 탁상용 라디오보다 음질이 떨어지고 잡음이 심했다. 다행히 시장에선 휴대용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미국에선 일본을 넘어 큰 히트를 쳤다. 미국의 1950년대는 로큰롤 태동기였다. 부모님 몰래 로큰롤을 즐기기엔 집 안 거실에 놓인 커다란 진공관 라디오는 무용지물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도그’ ‘돈 비 크루얼’을 듣기엔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제격이었다.

1953년 등장한 TV는 1960년 컬러 TV 방송 시작과 1964년 도쿄 올림픽 생중계를 계기로 미디어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라디오 방송이 시들해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은 TV와 상관없이 애청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올 나이트 닛폰’이란 라디오 프로그램 또한 70년째 사랑받고 있다.

1995년 1월 17일 일본 간사이 지방을 강타한 지진은 사망 6000여 명, 부상자 4만4000여 명이라는 큰 피해를 초래했다. 일본 현대사에서 가장 큰 재난으로 일컬어지는 이 지진 때, 라디오는 소중한 존재였다. 도로, 통신, 철도가 끊긴 상태에서, 건전지로 작동하는 라디오는 이재민에게 실시간 정보를 제공했다. 재난 구조 요청, 긴급 경보, 대피소 정보를 전하는 것도 라디오였다. 이는 1997년 일본 정부가 재난 대비용 라디오(손으로 돌려서 직접 전기 발생 및 충전 가능, 손전등 기능 탑재, 긴급 방송 자동 수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은 인터넷 라디오가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해다. 전파가 아닌 인터넷 프로토콜에 의해 전달되기 때문에, 컴퓨터, 휴대전화 등 다양한 기기에서 들을 수 있다. 다시 듣기 기능, 개인 맞춤형 추천, 청취 데이터 분석을 통한 타깃 광고 등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라디오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라디오 방송 100년의 역사를 보면 니즈(needs·수요)가 기술 혁신을 낳았고, 기술 혁신이 또 다른 니즈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라디오 방송뿐일까.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다. 내가 속한 비즈니스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기술은 어디까지 왔는가. 지금 충족 가능한 니즈는 무엇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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