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군사적 의사 결정에 완벽히 통합하는 첫 번째 국가가 21세기의 역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미국 스타트업 ‘스케일AI’의 알렉산더 왕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미 국방부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선더포지(Thunderforge)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선더포지는 AI가 대규모 군사 데이터를 분석하고 군 지휘관에게 작전을 제안하는 일종의 ‘AI 사령관’ 시스템이다. 이 프로젝트엔 마이크로소프트와 방산 AI 스타트업 안두릴도 힘을 보탠다.
AI로 무장한 ‘디펜스 테크(첨단 국방 기술)’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두 전쟁’이 첨단 방위산업 기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3년 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AI 전쟁 실험실(타임지)’이란 평가를 받았고, 그 이듬해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선 ‘AI 공장이 가동됐다(워싱턴포스트)’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을 필두로 한 전 세계 주요국 정부는 AI 군사 기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영리 정책 연구 기관인 국제거버넌스혁신센터(CIGI)에 따르면 각국 정부의 AI 관련 국방비 지출은 2022년 46억달러(약 6조7000억원)에서 2023년 92억달러까지 늘었고, 2028년엔 388억달러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WEEKLY BIZ는 AI 기술이 전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나가는지 분석했다.
◇속전속결 AI 사령관
최근 AI 기술을 가장 빠르게 접목하는 분야는 ‘AI 사령관’이다. 그간 미군은 세계 최고 군사력을 갖추고도 목표 설정이나 공격 판단 등 ‘전투 계획’ 속도가 느려 각종 첨단 무기의 성능을 100%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전투 지휘를 돕는 AI 사령관의 등장으로 전투의 속도와 효율성은 비약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AI 사령관의 위력이 드러난 첫 전장은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전쟁터였다.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자, 이스라엘 방위군은 즉각 대응에 나서 단 27일 만에 목표물 1만2000곳을 타격했다. 군수 창고부터 무기고, 미사일 발사대, 지하 터널, 지도부 건물 등 하루 평균 400곳 넘는 목표물을 공격한 셈이다. 속사포 같은 공격 뒤에는 이스라엘이 개발한 AI 시스템 ‘하브소라’가 있었다. AI가 통신 감청 내역, 위성 영상, 소셜미디어 게시 글 같은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해 공습 리스트를 뽑아낸 것이다. 이스라엘은 건물이 아닌 ‘인간 표적’을 특정하는 AI 시스템 ‘라벤더’도 전쟁 기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 미므란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미 시사 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2010년대 초반엔 표적을 200~250개 만들기 위해 정보 요원 약 20명이 250일 정도 일해야 했지만, 현재 AI 시스템은 한 주 안에 똑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켜낸 것도 AI 사령관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이 활용한 ‘델타 상황 인식 시스템’은 AI 기술을 활용해 페타바이트(약 100만 기가바이트) 단위의 영상·사진·음성·문자 정보를 처리해 전선의 우크라이나 지휘관에게 적군 위치를 정확히 전달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카테리나 본다르 연구원은 WEEKLY BIZ에 “우크라이나의 AI 기반 ‘즈부크 음향 정찰 네트워크’는 우크라이나 영토 내 약 2만㎢ 구역을 감시하면서 5㎞ 떨어진 (러시아군의) 저고도 비행 드론이나 7㎞ 밖의 순항미사일을 높은 정확도로 탐지해 냈다”고 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 사령관은 ‘분업’을 통해 전장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속도도 끌어올렸다. 예를 들어 AI 정보 사령관은 적군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해 알려주고, AI 작전 사령관은 어떤 무기로 어느 정도 공격을 가해야 효과가 있을지 조언해주는 식이다. 심승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AI는 군수품이 얼마나 남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분석해 주는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고, 우리나라도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제공권 거머쥐는 AI
미래 전투에서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한 필수 요건도 AI다. 중국 최대 방산 기업인 노린코(중국북방공업)의 연구팀은 지난해 말 중국의 무기 체계 관련 학술지에 “적외선 이미징 기술과 AI 기반 예측 모델을 활용해 개발한 시스템으로 적 전투기의 미묘한 날개 움직임을 포착하면 향후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 시스템의 목표 설정 오차는 2m 이내로 기존 시스템에 비해 열 배 개선됐다. 이동 방향을 제대로 예측하면 적 전투기의 조종석을 정확히 노려 공격할 수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민첩한 전투기인 F-15조차도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전했다.
AI 무인기 중에선 AI 자율 비행 기능을 탑재한 드론이 ‘공중의 지배자’로 주목받는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에는 원격 조종 드론을 주로 사용했는데, 지난해부턴 AI 기반 드론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AI 드론은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경로를 설정하고 목표를 탐지·추적한다. 장애물을 스스로 인식하고 경로도 수정해 가며 비행한 뒤 목표물에 충돌해 자폭하거나 폭탄을 투하하기도 한다.
AI와 손잡은 드론은 유인 전투기의 자리까지 위협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11월 24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이 와중에 몇몇 바보는 여전히 F-35와 같은 유인 전투기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며 드론 관련 영상을 함께 올렸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그가 대선 직후 ‘유인 전투기 무용론’을 꺼내 든 셈이다. 드론으로 전투기를 대체하면 전투기 구입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전투기 조종사의 희생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미 해군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였던 메리 커밍스 조지메이슨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도 “제트 전투기는 무기를 나르기 위한 ‘플랫폼’에 불과하다”며 “최소한의 인간 감독은 필요하지만 전투기를 AI 무기로 대체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고 (정부도) 그렇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AI 로봇 군단이 온다
앞으로는 로봇 군단이 사람을 대신해 인해전술을 펼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군은 “인간 보병 대신 로봇 시스템만으로 최초의 지상 공격을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가 언급한 로봇은 기관총을 장착한 무인 지상 차량(UGV) 수십 대와 드론 부대를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주장에 따르면 두 나라의 핵심 교전 지역인 리프치 마을에서 이 ‘로봇 부대’가 러시아군을 공격하고 지뢰를 제거했다고 한다. SF(공상과학) 영화 터미네이터 등에 등장하는 인간형 로봇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움직여 공격을 수행하는 로봇 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꼭 군사용 로봇이 두 발로 걸어 다닐 필요는 없다. 최근엔 사족 보행하는 로봇 개도 로봇 군단의 주요 구성원으로 주목받는다. 미 육군은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AI 로봇 개 훈련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서 로봇 개는 다양한 방향으로 조준이 가능한 소총을 장착하고 있었다. IT 전문 매체 테크레이더는 “AI로 구동하는 이 로봇 개의 주된 임무는 드론 방어로, (사람 개입 없이도) 자체적으로 공중 표적을 감지하고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같은 해 5월엔 중국인민해방군도 캄보디아와 연례 합동 군사훈련을 할 때 군사용 로봇 개를 선보였다. 중국 국영 CCTV는 “로봇 개는 이동, 점프, 웅크리기 같은 동작이 가능하고,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이동 경로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방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AI 기반 주행 및 공격이 가능한 다목적 무인 차량 ‘아리온스멧’을 개발했다. 아리온스멧은 물자 운송뿐 아니라 총성의 패턴 등으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해 탑재된 총기로 적군을 조준하는 기능까지 갖춘 넓은 범위의 AI 로봇이다.
◇‘형님들’ 따돌린 AI 방산 기업
AI 기술은 방위산업의 지형도 바꿔놓고 있다. 팔란티어는 지난해 3월 당시 세계 최대 방산 기업이던 RTX(레이시온)를 제치고 ‘AI 사령관’을 탑재한 전투용 트럭인 타이탄 열 대를 미군에 공급하는 1억7800만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다. 타이탄은 다양한 센서로 전투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다음, 실시간으로 병사들에게 전략적 정보를 제공하는 전투 지휘 차량이다. 팔란티어는 지난 7일 타이탄 두 대를 성공적으로 납품했다고 밝혔다. 팔란티어의 시가총액은 2023억달러로 이미 전통적인 방산 기업인 RTX(1736억달러)나 록히드마틴(1097억달러)을 넘어섰다. 1년 전 20달러대였던 주가가 지난달엔 12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2017년 미국에서 설립된 안두릴은 정찰용 무인기 ‘고스트’를 주력으로 판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AI 기반 감시 타워를 구축하기도 했다. CNBC는 “지난해 8월엔 안두릴의 기업 가치가 140억달러 수준이었지만, 최근 자본 조달 과정에서는 기업 가치를 280억달러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유럽에선 독일 스타트업 헬싱이 유명하다. AI 드론 ‘HX-2’를 만들었고, 2023년엔 독일 유로파이터 전투기에 AI 플랫폼을 탑재하는 계약도 맺었다. 이런 군사 스타트업엔 투자금도 몰린다. 스타트업 시장조사 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전 세계 방산 스타트업에 몰린 투자금은 163억달러에 달한다.
전통적인 방산 기업도 자신들이 생산하는 무기·장비에 AI 기술을 접목하는 추세다. 록히드마틴은 유인 전투기와 무인 전투기가 팀을 이뤄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협력 전투 항공기’ 개념에서 길을 찾고 있다. 이 회사의 첨단 기술 개발팀인 스컹크웍스는 지난해 유인 항공기 조종사가 터치스크린을 통해 AI 제어 항공기에 실시간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시연했다. 미국 RTX는 AI를 활용해 레이더 시스템의 성능을 높이고 있고, BAE 시스템스는 무인 함정이나 잠수함이 스스로 항로를 계획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AI 자율 항해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오펜하이머 모멘트’에 대한 우려
최근엔 미국 빅테크나 AI 개발사도 AI 기반 무기 체계 개발을 크게 꺼리지 않는 분위기다. 구글은 지난달 자사 AI 원칙에서 ‘AI를 무기 또는 감시 기술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구글은 2017년부터 미국 국방부가 주도하는 AI의 군사적 활용 계획인 ‘프로젝트 메이븐’에 협력하다가, 이듬해인 2018년 내부 반발로 ‘AI 무기화 금지’를 선언했다. 그런데 대략 7년 만에 조용히 이를 철회한 셈이다. 지난해 말엔 챗GPT 개발사 오픈AI도 안두릴과 협력해 군사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이미 클라우드 서비스를 국방용으로 제공 중이다.
너도나도 AI의 군사적 활용에 나서자 ‘오펜하이머 모멘트’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확인하고 회의감에 휩싸였듯, AI 무기화를 적절히 규제하지 않으면 대규모 인명 살상과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AI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물론 현재 AI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나라들은 “AI는 보조적 수단일 뿐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AI의 정보 제공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이 이를 하나하나 검토하긴 어려워진다. 이스라엘 온라인 매체 ‘+972 매거진’은 지난해 4월 군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AI 시스템 사용에서 인간 지휘관은 AI 결정에 대해 ‘인장(印章)‘을 찍는 역할만 했고, 이들이 폭격 허가를 내리기까지 2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I가 정한 목표물을 ‘인간 지휘관’이 꼼꼼하게 검증한 게 아니란 뜻이다.
소위 ‘킬러 로봇’이라는 자율 살상 무기(LAWs)에 대한 적절한 규제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 미시간대 자율우주항공시스템연구소 소장인 엘라 앳킨스 교수는 “전투기 AI 시스템에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도록 ‘안전 설정’을 철저히 해둔다고 해도 무기 발사 결정을 내리는 건 인간 조종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AI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지뢰 제거 AI 로봇은 사람들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새 군사 기술은 살상 능력의 증대로 이어지곤 했다”며 “AI가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없도록 법적·도덕적 한계선을 설정하는 새로운 국제 규약 제정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