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그로주빈스키 익스플레인트레이드 대표/익스플레인트레이드

“만약 어느 수산시장에서 한 상인이 생선 무게를 꼬리 길이로 나눠 구한 값을 (근거도 없이) ‘공정 가격’이라 부르며 다른 상인에게도 강요하면 어떻겠어요? 이번 관세 조치는 딱 그 정도 수준입니다.”

글로벌 무역 협상 전문가인 드미트리 그로주빈스키 익스플레인트레이드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들고나온 상호 관세를 산출한 방식이 이처럼 황당무계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는 각국이 미국을 상대로 기록한 무역 흑자를 각국의 대미 수출액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상호 관세를 계산했다. 그로주빈스키 대표는 12일 WEEKLY BIZ 인터뷰에서 “무역과 관련한 수많은 변수를 반영해 정교한 계산을 내놔도 모자랄 판에 무역 흑자와 수출액으로 상호 관세를 산출한 것은 매우 게으르고 어리석은 접근법”이라고 했다. 호주 외교관 신분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무역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그로주빈스키 대표는 지난해 5월엔 ‘왜 정치인은 무역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

◇“무역 흑자는 불공정성의 지표 아냐”

-트럼프의 상호 관세 계산법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을 상대로 기록하는 무역 흑자가 클수록 미국 상품을 불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보는 건 잘못된 접근법이다. 무역 수지가 균형을 이뤄야 공정하다는 전제부터 이상하다. 국가별로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이유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아프리카 내륙의 빈국인 레소토를 상대로 50%에 달하는 최고 수준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 나라는 미국에 2억3700만달러어치 의류와 다이아몬드 등을 수출했지만, 미국으로부터 수입은 7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레소토의 국민들이 형편이 어려워 미국산 제품을 못 사는 것이지, 미국에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관세율을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상황은 어떻게 보나.

“트럼프가 관세를 높이려고 근거로 삼는 법은 본래 이렇게 마구 휘두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트럼프는 2일 상호 관세의 근거로 국제긴급경제권한법과 국가비상법 등을 제시했다.) 이 법들은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비상 상황에서 무역을 급격히 줄일 필요가 있을 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다. 수많은 전선에서 동시에 무역 전쟁을 벌이도록 허용하는 ‘백지위임’ 형태는 아니란 뜻이다.”

◇“관세로 미국 제조업 부활 못 시켜”

-관세 부과로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늘까.

“매우 회의적이다. 우선 제조업 일자리가 늘려면 글로벌 기업들이 ‘높은 관세가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오락가락해) 일주일 후 상황도 장담하지 못한다. 또 미국 제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은 상태(지난해 기준 9.3%)라 트럼프의 바람대로 제조업 일자리가 다소 늘더라도 전체 일자리는 크게 늘 수 없다. 일자리 증가 효과는 미미한데 관세 부과로 수입품 가격은 올라 많은 미국인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당신의 저서처럼 트럼프도 무역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건가.

“무역 정책이 바뀌면 누군가는 혜택을 보지만,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예를 들어, 무역 장벽을 높여 국내 시장을 보호하면 해외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들은 보호의 이점을 누리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더 비싸게 물건을 사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같은 정치인들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철저히 숨긴다.”

-미·중 무역 전쟁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까.

“우선 미·중 양국이 동시에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커졌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 또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면서 생긴 재고를 처리하려 신흥국 시장에서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판매에 나서면 신흥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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