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최근 세계 경제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관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경제 부흥을 명분 삼아 내세운 관세 카드는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라고 반복해 주장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 제품은 사주지 않으면서, 물건을 미국 시장에 팔아먹기만 한 탓에 미국 경제가 망가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무역에 대한 이런 인식을 두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경제학적 상식과는 동떨어진 발상”이라고 말한다. 무역 적자는 무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며,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무역 적자의 실체는 무엇일까. 무역 적자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다섯 문답으로 풀어봤다.

◇1. 무역 적자는 나쁜가

흔히 무역 적자를 두고 ‘무역 수지가 악화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주도형 성장을 해 온 나라는 무역 적자를 나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수출이 곧 돈을 버는 것이고, 수입은 비용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역에서의 수입은 주로 자국에서 만들면 더 비싼(또는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들여올 때 발생한다. 개인 간 거래로 치면 원래 비싼 비용을 들여 직접 만들어 써야 할 물건을 싸게 사는 게 수입이다. 수입으로 들여오는 상품이 꼭 필요한 재화라면 자국에서 비싸게 만드느니 싸게 수입품을 사서 쓰는 게 결국 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국가 간 무역이 이뤄지는 ‘개방형 경제’에서 적자는 대출로 충당할 수 있다. 국제경제학에선 이런 차입금을 외국에서 들어온 투자금으로 본다. 통상 돈을 빌리려면 국채를 발행해 팔아야 하는데 국채를 사주는 게 결국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국채는 안정성 면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투자 자산이다. 그래서 수많은 국가가 미국으로부터 무역 흑자를 볼 경우 쌓인 달러를 그대로 쌓아 두는 게 아니라 결국엔 미국 국채 매입이라는 형태로 미국에 다시 투자한다.

결국 한 나라가 생산적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고, 그중 일부는 필요한 상품을 수입하는 데 썼다면 반드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버드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의 로버트 로런스 국제무역학 교수는 “무역 적자가 투자가 아닌 소비 지출을 위해서만 쌓인다면 그 적자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자로 인한 차입금이 결국 경제적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되고 수익으로 상환할 수 있다면 이는 사회 복지를 향상시킨다”고 했다. 결국 무역 적자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서는 무역 적자가 나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뜻이다.

◇2. 양자 간 무역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나

로런스 교수는 “양자 간 무역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화폐를 통한 거래보다 물물교환이 낫다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잘못됐다”고 했다. 전미경제학회 경제학 전망 저널의 편집장인 티머시 테일러 박사도 해당 저널에서 “세 국가만 있는 세계를 가정해도, 한 나라와의 무역에서 무역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다른 나라와는 무역 흑자를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세 국가가 모두 전체적인 무역 균형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해외 차입금이 더 필요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수출을 되도록 늘려 자금(저축)을 확보해야 하는 나라가 있다는 뜻이다.

◇3. 무역 적자는 항상 일자리 감소와 성장 둔화로 이어지나

트럼프는 특히 중국산 저가 상품이 쏟아져 들어와 관련 상품을 만드는 일자리가 줄고, 미국의 성장도 둔화됐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저가의 수입 제품이 무역 적자의 주된 이유일 경우 수입 증가는 국산 제품의 판매 감소, 성장 둔화,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조금으로 자국 제품을 밀어주는 일이 반복돼 트럼프가 중국을 경계하게 됐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제한적인 해석이다. 수입이 늘고 무역 적자 규모가 커진다고 고용 감소가 반드시 일어나는 건 아니라서다. 로런스 교수는 “오히려 국내 고용이 늘고 국민 수입이 늘어나면 해외 제품에 대한 지출이 증가해 무역 적자가 확대되기도 한다”며 “고용과 무역수지라는 두 지표가 각각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미국의 수입 증가율과 고용 증가율은 정비례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 美 고용 감소의 원흉은 무역 적자인가

미국의 제조업 고용 감소의 원인 역시 단순히 중국산 저가 상품 때문만은 아니란 분석도 많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가 2016년에 쓴 ‘수입 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 대침체’ 논문에 따르면, 200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중국산 상품이 일정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전체 손실의 약 80%는 다른 요인 때문이었다. 일자리 감소는 기술 발전, 자동화, 소비 트렌드 변화 등 구조적인 흐름에 따른 결과라는 뜻이다.

◇5. 무역 정책의 목표는 무역수지 관리인가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고율 관세로 무역 흑자를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설명이다. 무역 정책의 목표는 적자 회피보다 경제 전반의 성장과 발전에 맞춰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데이비드 허버트 미국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무역 적자를 통해 확보됐던 미국 내 투자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며 “적자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보호주의는 소비자 및 생산자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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