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홈페이지는 ‘어찌 보면 인생사의, 대한민국 입시 잔혹사의, 웃픈 단면을 그린, 결국은 사랑이야기, 결국은 사.람.이.야.기.’ 라고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랑과 사람이야기를 통해 드라마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뭘까? 점을 찍어가며 사람이야기를 강조한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는 ‘남과 비교해 스스로 불행해지지 말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겠지만 제목부터가 문제의 ‘비교’를 깔고 있다. 이타, 삼타가 아닌 일타의 스캔들이다. 하긴 이타나 삼타의 스캔들이라면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드라마상 실제로 삼타 수학강사 진이상(지일주 분)은 스캔들 정도가 아닌 지동희(신재하 분)의 손에 죽음을 맞았음에도 배경이 된 녹은로 학부모들 사이에 가십거리조차 안됐다. 그 역시 일타 최치열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생을 낭비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그 최후조차 담당 형사들에게만 관심사가 되고 만 셈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부각되는 장서진(장영남 분)네 가정의 비극과 괴물이 되어버린 지동희 스토리, 그리고 방수아(김나연 분)의 스트레스성 정신 장애 역시 이 같은 비교 심리에서 싹을 틔웠다.
지동희의 친모는 이혼이든 사별이든 홀어머니였다. 아비 없는 자식들을 남들보다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이 화를 불렀을 것이다. 방수아 역시 ‘내가 뭐가 부족해서 반찬가게 딸 남해이보다 못해야 하나?’란 열등감이 증오를 불러일으켜 스트레스를 키웠다.
특히 장서진은 12년 전 지동희 친모의 비극적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어 보는 이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지동희의 친모 역시 자녀교육을 위해 녹은로에 흘러들었고 남편도 없이 극성으로 정수현·정성현 남매를 공부에 내몰았다. 급기야 정수현의 성적향상을 위해 문제지 유출을 시도했고 그로 인해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 딸 정수현의 극단적 선택을 초래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극성을 다시 남은 아들 정성현에게 쏟아붓다 아들 손에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장서진 역시 정서적 학대 수준의 공부 극성으로 큰아들 이희재(김태정 분)를 방구석 폐인으로 만들었고 1등 한 번 못해보는 둘째 아들 이선재(이채민 분)의 내신을 올리기 위해 교무부장에게 청탁해 국어문제지를 유출한다.
또한 아들 선재가 그 사실로 괴로워하건 말건 아들과, 유출문제지를 같이 보았던 남해이(노윤서 분)의 입만 막으려 애쓴다. 아들 선재는 남해이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투신을 시도할만큼 절박한데도 ‘차라리 남해이가 죽었으면’ 싶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장서진의 경우는 능력있는 변호사다. 남들보다 우월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식들도 보란 듯이 우월하길 바란다. 허영이다. 방구석 폐인 희재를 주변에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공부 중인 것으로 각색한 것도 그 허영에서 발로한다.
14화에서 ‘중학생 친모살해사건’을 수사했던 송이태 형사가 당시의 경비를 만나 얘기를 듣던 중 “아무튼 정상이 아녔어. 그 집 식구들.”이란 경비의 대사 뒤 끝에 카메라가 장서진을 비춘 것은 영리한 연출였다. 화면 속 장서진은 대법원서 최종 승소하고 로펌 식구들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잘난 변호사 장서진이지만 홀몸으로 죽기 살기 자식 공부에 매진한 정성현의 엄마만큼 ‘정상이 아닌’ 상태임을 보여준 것이다.
즉 정성현 엄마에게서 보여지는 열등감과 장서진에게서 발견되는 우월의식은 비교 심리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열등감은 질투와 증오를 낳고 우월감은 허영과 초조를 낳는다. 모두 부정적인 정서다. 무엇보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내면엔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기 십상이니 우월감과 열등감은 한 몸에 다름 아니다.
드라마에는 남과 비교하지 않아서 행복한 사람들도 나온다. 남행선(전도연)이 그렇고 남행선으로 인해 각성한 최치열(정경호 분)이 그렇고 김영주(이봉련 분)가 그렇다. ‘비교’란 사회적 잣대에 오염되지 않은 학생들인 남해이, 이선재, 서건후(이민재 분), 장단지(유다인 분) 등도 마찬가지다.
남 신경 쓸 틈에 제 감정에 충실하니 당당하고, 그런 자존감은 삶의 질을 높인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타인과 비교해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내면의 폭군’이라 말했다. 폭군에 휘둘리면 불행한 노예밖에 될 수 없음을 드라마는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다행히 장서진과 봉수아는 구원받을 모양이다. 장서진에겐 “아빠, 저 선잰데요. 엄마 좀 도와주세요.”라 말해주는 아들과 그 아들 부름에 응할 것이 분명한 남편이 있고, 봉수아에겐 남들 눈도 중하지만 그보단 딸이 훨씬 소중한 엄마 조수희(김선영 분)가 있기 때문이다.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한만큼 이들에게도 행복한 엔딩이 예비돼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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