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올해 가장 뜨거운 관심과 주목을 받은 배우 염혜란(45)은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무너지지 않는 공든 탑이다. 2000년 연극 '최선생'으로 연기를 시작해 올해 21년 차 내공을 쌓은 그는 한결같은 뚝심과 철저한 자기반성, 겸손한 태도까지 배우가 가져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완벽한 '믿고 보는' 배우다.
미스터리 영화 '빛과 철'(배종대 감독, 원테이크필름·영화사 새삶 제작)에서 교통사고 후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남은 딸을 위해 간병과 출근을 반복하는 영남을 연기한 염혜란. 그가 10일 오전 진행된 국내 매체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빛과 철'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빛과 철'은 단편영화 '고함'(07) '계절'(09) '모험'(11)으로 주목받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답지 않은 섬세하고 날카로운 치밀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을 담은 '빛과 철'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4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화제성은 물론 작품성에 대한 검증까지 두루 마친 2월 신작이다.
특히 '빛과 철'은 '대세' 염혜란의 인생작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영화 '증인'(19, 이한 감독) '이웃사촌'(20, 이환경 감독)과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최근 채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등을 오가며 보여준 끝없는 연기 변신을 시도한 염혜란은 동물적 감각과 오랜 연기 내공으로 '빛과 철' 속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고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대세 배우'임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염혜란은 '빛과 철'로 지난해 열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배우상을 수상하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설날 연휴를 겨냥해 오늘(10일) 개봉하는 '새해전야'(홍지영 감독)와 '아이'(김현탁 감독), 그리고 오는 18일 개봉하는 '빛과 철'까지 동시기 무려 세 편의 영화로 관객을 찾게 된 염혜란은 "시기가 잘 맞은 것 같다. 위기의 시기인데 반대로 작품이 몰리면서 세 작품이 동시에 극장에 걸리는 행운을 얻게 됐다. 시기적으로 맞았던 것뿐이지 평소에 많은 작품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실히 예전보다 캐릭터 선택의 폭은 넓어진 것 같다. 과거에는 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많이 접할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특히 '빛과 철'은 연기 베테랑 염혜란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작품이었다고. 염혜란은 "장르적으로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어서 계산적으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 연기적 계산이 필요했는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영남의 감정이 염혜란이란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점도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실한 사람인데 그런 모호한 경계에 있는 캐릭터가 어렵게 느껴져 배종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염혜란은 '빛과 철'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김시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김시은과 첫 대면에서 장면적으로도 긴장해야 했고 김시은이란 배우 자체가 '독립영화계 전도연'으로 불리고 있는 만큼 센 이미지가 있어 더 긴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허당 매력이 많더라. 현실에서 봤을 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연기할 때 집중력이 좋고 그 마스크가 너무 좋다. 이 영화는 '김시은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의 연기가 너무 좋고 조용한데 단단하고 폭발력이 있다"고 극찬했다.
최근 '경이로운 소문'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염혜란은 인기에 대한 생각도 솔직했다. 염혜란은 "아직 밖을 안 나가서 인기에 대한 실감을 모르겠다. 설에 누군가를 만나야 실감을 할 것 같다. 그래도 종종 10대 남자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건 느낀다. 주위 부모님들이 아들이 좋아한다며 사인 요청을 하더라. 나를 사랑해주는 대중의 연령대 폭이 넓어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아무래도 '경이로운 소문' 덕분인 것 같다. 10대 소년들이 히어로에 열광하는데 그 작품을 엄청 좋아했다. 보통 '어벤져스'에서 히어로를 찾다가 한국에서 오랜만에 히어로 물이 나와 더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해외 히어로와 달리 우리나라 히어로는 짠내 나서 더 재미있어하더라. 작품 영향으로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염혜란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또 다른 '인생작'에 대해 '동백꽃 필 무렵'에 대한 애정도 전했다. 그는 "동백꽃 필 무렵은 배우의 자존감을 많이 높여준 작품이다. 그 작품을 선택하기 전에는 내가 만든 편견이 가장 단단하고 높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그 작품을 선택하기 전 시청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 연기를 만족해서가 아니라 도중 하차 당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는 지점에 만족감이 있었다. 스스로 내 이미지를 고정시켜왔던 것 같다. 그 작품 이후로 성장한 것 같다. '동백꽃 필 무렵' 이후 지금까지 너무 다양한 역할을 받았다. 복을 받았다. 전혀 다른 장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내 목표는 보는 이들이 내 연기를 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평생 연기해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힘을 빼는 연기를 해보는 게 내 최고 목표다"고 소신을 전했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까지 어려웠던 과정도 털어놨다. 염혜란은 "연극배우 출신으로 선배들인 이정은, 라미란, 진경 선배들의 행보를 보면서 매번 놀라고 있다. 지금 라미란 선배와 영화 '시민 덕희'(박영주 감독)를 촬영하고 있는데 이렇게 연극 무대가 아닌 곳에서 만날 수 있게 돼 영광이다"며 "사실 나는 선배들이 어렵게 닦은 길을 너무 편하게 가고 있다. 전에는 연극배우라는 선입견과 문턱이 높았다. 그래서 선배들이 겪은 힘든 일도 많았는데 그걸 견디고 극복한 선배들이 닦은 길 덕분에 내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만약 후배들이 나를 통해 그런 걸 느낄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어 "보통은 연극 연기를 하다 매체(영화, 드라마) 연기를 하면 '성공했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말이 나 같은 배우들에게는 상처를 준다. 연극을 할 때는 성공을 못 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 그런 프레임으로 안 봤으면 좋겠다. 매체 연기를 진출하지 못해 연극을 한 것은 아니다. 연극 무대로 시작해 열심히 내공을 쌓았고 운이 좋아 좀 더 다양한 무대의 기회가 많이 주어진 것이다. 연극하는 후배들이 그런 편견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빛과 철'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염혜란, 김시은, 박지후 등이 출연하고 '곡성' '시체가 돌아왔다' 연출부 출신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오는 18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