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예지를 둘러싼 이른바 ‘악녀(?)’ 논란이 쉬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그와 전 남자친구 김정현이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둘 사이의 SNS 대화가 지시와 복종의 관계로 해석되면서, 김정현보다 서예지가 더 못된 악역으로 떠올랐다. 한 마디로 김정현의 잘못된 행동들은 서예지의 조종 탓이라는 식으로 여론 재판의 저울대가 기우는 중이다.

정작 서예지 본인은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질문 공세에 입을 다물고 있다. 하필이면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내일의 기억’이 최근 개봉한 게 후폭풍을 불렀다. 관계자들의 (서예지를 향한)비난 또는 옹호성 발언이 계속되는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서예지는 전 남친을 궁지에 빠뜨린 악녀일까 아니면 또다른 마녀사냥의 희생양일까.

몇몇 호사가들은 이번 서예지 논란에 추억의 명화 한 편을 소환했다. 조지 큐커 감독의 1948년작 ‘가스등(Gaslight)’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자 상속녀 폴라(잉그리드 버그만)가 유학길에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사이코패스 그레고리(찰스 보이어)의 마수에 빠지는 이야기다. 영화 속 그레고리는 저택의 가스등 불빛을 조절하는 수법으로 폴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조정한다. 여기서 비롯된 심리학 용어가 ‘가스라이팅’으로 알려져 있다. 명작은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와 감동을 제공한다. 무려 73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 다시 봐도 웰메이드 스릴러의 매력을 솔솔 풍기는 작품이다. 결말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고전과 현대판 ‘가스등’의 남녀 관계는 바뀌었다. 서예지가 그레고리, 김정현이 폴라를 연기한게 2021년 한국 연예계를 강타한 가스라이팅의 구조다. 어라,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영화 속 그레고리는 상속녀를 정신이상 살인범으로 몰아 보석을 챙기자는 목적(?)이 있었다. 서예지는 과연 김정현을 조종해서 무엇을 얻는걸까. 지배욕의 달성 또는 우월적 만족감? 타고난 악녀라서? 아니면 그냥 남녀관계의 밀담을 그럴듯하게 ‘가스라이팅’ 스캔들로 포장한 결과물?

정답은 서예지 본인 이외에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의 기억’ 서유민 감독이 얼마전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 진행자와 나눈 대화는 참고의 여지가 있다. 서 감독이 ‘내일의 기억’에서 함께 작업한 서예지의 외모와 연기력에 대해 극찬하자 최욱은 “(서예지가)상대역을 바꾼다든지 스킨십을 빼달라고 하든지 딱딱하지 하진 않았냐?”며 살짝 비꼬느 질문을 했다. 김정현과의 가스라이팅 논란을 배후에 깐 듯한 역질문인 듯.

서 감독이 “연습을 많이 해서 뭐 하나 고치는 거에 대해서 더 주저했다”고 답하자 다시 최욱은 “자기 작품은 그렇게 하고 남자친구 작품은 고치라 하고 너무하네”라며 일침. 이에 서 감독은 “고치게 한다고 고치는 사람이 더 문제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갓 개봉한 자신의 신작 영화에 주연을 맡은 여배우를 감싸고 싶은 서 감독의 마음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잘못한 사람보다 시킨 뒷배를 더 욕하는 우리네 정서에는 상당히 거슬린 모양이다. 위에 기술한 방송 대화가 보도된 후 서 감독을 향한 비난 여론이 상당했으니까. 침묵하는 서예지의 지금 속마음은 아마 서 감독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런지. “하란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거지, 내가 뭘 어쨌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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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DB,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