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포위한 탈레반 무장세력 - 15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곽 지역인 레그먼에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 조직원들이 휴대용 로켓 발사기와 소총 등을 들고 차량 위에 앉아 있다. 불과 1주일 사이에 아프간의 주요 지역을 모두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카불을 완전히 포위했고, 아프간 정부는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AFP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진입하자 아프간 정부가 ‘백기’를 들면서 정권 이양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11일 탈레반이 아프간 남부의 제2도시 칸다하르를 함락한 지 불과 4일 만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카불 함락 시점을 미군 철수 이후 6~12개월로 예상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지난 5월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아프간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CNN의 보도대로 ‘놀랄 만한 속도(stunning speed)’였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의 최신 장비로 무장해 표면 전력은 탈레반을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아프간이 탈레반 수중에 넘어간 가장 큰 이유는 아프간 지도층의 분열 및 부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임금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유령 병사’가 많다”며 “정부군 장교들은 실제 병력이 장부상 인원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포기한 것이 아프간 정부군의 사기를 꺾는 결과를 낳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NYT는 “미국이 철군을 발표했을 때 탈레반은 동력을 끌어모은 반면, 아프간 정부군 내부에선 ‘정부를 위해 싸우는 것이 목숨 걸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다’란 생각이 퍼졌다”고 했다.

현금 인출 위해 카불시내 은행앞에 장사진 - 15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손에 들어간 가운데, 시내 은행들에는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큰 혼란을 빚었다. 이날 아프간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사재기도 벌어져 달러 가치가 25% 이상 폭등했다. /AP 연합뉴스

카불에 진입하기 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제4의 도시인 마자르-이-샤리프, 수도 카불과 인접한 잘랄라바드를 연달아 함락했다. 이후 탈레반은 카불로 통하는 4개 도로를 통해 진격한 후, 카불 인근에서 “(아프간) 정부나 군에서 일한 모든 이들이 용서받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복수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아프간 정부군에게 ‘공격하기 전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탈레반은 또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며 “여성들은 히잡(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헤어 스카프)을 쓰고 교육·근로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탈레반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프간 내 여론과 국제사회를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탈레반이 카불에 완전히 진입할 경우 미군이 2001년 11월 13일 이곳을 점령한 이후 약 20년 만에 수도를 다시 차지하게 된다.

앞서 미 백악관은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자 이날 성명을 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총 5000명의 미군 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아프간 주재 미 대사관 경비 등을 위해 미군 1000명을 남겨두기로 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2일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미군 3000명을 배치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이틀 만에 1000명을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이날 대사관 외교관들을 아프간 밖으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와 함께 아프간 주재 자국 대사관에 “선전 활동에 악용될 수 있는 경우를 비롯해 민감하게 다뤄지는 물품을 파괴하라”는 내용의 ‘긴급 파괴 임무(Emergency Destruction Service)’를 하달했다고 한다.

영국 정부도 로리 브리스토 아프간 주재 영국 대사를 오는 16일 저녁 전까지 아프간에서 탈출시킬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영국은 브리스토 대사 등을 공항에 남겨 이달 말까지 자국 국민들에 대한 대피 작전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상황 악화에 출국 일정을 급히 앞당긴 것이다.

카불이 함락 직전 상태에 놓이자 카불 국제공항 터미널 밖 주차장에 마련된 항공권 판매 창구엔 표를 사려는 현지 주민들로 줄이 늘어섰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카불 시내엔 현금 인출과 ‘달러 사재기’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수십만명의 ‘아프간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의 고민이 되고 있다. 올해 들어 아프간에선 약 4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미 정부는 미군에 협력했던 아프간 난민 수만명을 카타르 등 제3국에 수용하는 방안을 상대국과 협상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날 캐나다 정부도 아프간 난민 수용 프로그램 대상을 총 2만명 규모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