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7일째에 접어들면서 하루빨리 승기(勝機)를 잡으려는 러시아의 공세가 더욱 맹렬해지고 있다. 민간인 주거 지역에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는 동시에 주요 도시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일거에 주도권을 잡으려는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러시아군이 일주일 내에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완전히 봉쇄하고, 4~6주 내에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수중에 넣을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군은 2일 북동부에 있는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 시내에 공중 강습(強襲) 작전을 펼쳤다. 우크라이나군 대공 화기가 격렬하게 불을 뿜는 가운데 다수의 공수부대가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시내에 진입했다. 민간인 지역에 대한 로켓포 공격이 재개되면서 사상자 10여 명이 추가로 나왔다. 외신들은 “러시아 공수부대와 우크라이나군 간에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하르키우가 함락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인구가 30만명인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의 물류 중심 도시 헤르손 중심부가 이날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졌다. 이고르 콜리카예프 헤르손 시장은 “러시아군이 항구와 중앙역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우크라이나군을 외곽으로 내몰고 있다. 폴란드 국경에 가까운 서부 지역에도 곳곳에 러시아 미사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상군의 본격적인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란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폴란드에서 밀려드는 서방의 군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서부 지역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수도 키이우를 둘러싼 양측 공방전은 2일에도 계속됐다. 러시아군은 “러시아를 겨냥한 사이버 및 심리전 공격을 차단하겠다”며 우크라이나군 정보전 시설에 대한 공습을 벌였다. 현지 언론은 “시내 주거지에 인접한 TV 송신탑이 파괴되고, 민간인 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김형태 주(駐)우크라이나 대사와 공관원, 교민 등 10여 명이 2일 키이우를 탈출했다. 이들은 대사관 임시 사무소가 설치된 루마니아 국경 인근 체르니우치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릴 예정이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정전 협상 2차 회담은 우크라이나 측이 “무차별 공격부터 중단하라”고 주장해 연기되는 듯했으나, 이날 밤 벨라루스 국경에 가까운 폴란드 비아워비에자에서 열리는 것으로 다시 협의가 됐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 국방부는 1일 전황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준비된 전력의 약 80%를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맹렬한 저항에도 러시아군이 조금씩 진격을 거듭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CBS 방송은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군이 일주일 내에 키이우를 완전히 포위하고 고립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완전히 장악하려면 30일가량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처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예상한 1~4일보다 훨씬 길어진 것이다.
미 국방부는 “현 상태라면 러시아군이 4~6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전술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러시아가 주요 도시를 장악해 친러 괴뢰 정부 수립에 성공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이 계속돼 게릴라전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이날 우크라이나 인터넷 언론 우크라인시카 프라우다는 주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 침공 이후 7일간 군인을 제외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2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러시아군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미국 정부는 2000여 명, 우크라이나군은 5300명의 러시아군이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사상자 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어머니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1만5000명, 체첸 전쟁 때 수천 명이 사망한 일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이번 전쟁을 납득시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NYT는 또 “사기 저하, 연료·식량 부족에 빠진 일부 러시아 부대가 전투를 피하려 군용차 연료통에 일부러 구멍을 내거나, 집단 투항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 상당수가 전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 징집병이란 증언도 나왔다. 러시아군이 식량을 훔치는 장면도 목격되고 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러시아군에 실질적 영향을 주려면 아직 멀었다”며 “현재의 사기 저하와 연료·식량 부족은 제재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