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사당 원형 중앙홀(로툰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47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1985년 1월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2기 이후 40년 만에 실내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이다. 주최 측은 북극 한파를 변경 이유로 알렸으나 정작 이날 기온은 영하 4도로 레이건 취임식(영하 14도)보다 훨씬 따뜻했다. 실내로 바뀌면서 참석자 규모도 당초보다 크게 축소된 800여 명으로 줄어들었고, 전직 대통령·부통령과 연방 대법관 등 요인들의 자리도 더욱 밀착됐다.
취임 장소가 급작스럽게 변경되면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장면도 보였다. 특히 트럼프의 취임 선서 직전 가수 캐리 언더우드가 군 합창단과 ‘아름다운 미국’을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는데 반주가 흘러나오다 뚝 끊기면서 장내가 술렁였다. 언더우드는 반주 없이 바로 노래를 소화했고, 미 언론들은 “뜻하지 않은 아카펠라 공연이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재입성과 함께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 인테리어도 트럼프 취향에 맞게 바뀌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오벌 오피스 복귀 후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1933~1945년 재임)의 초상화를 빼고 1기 재임 때 집무실에 가져다 놓았던 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1829~1837년 재임)의 초상화를 ‘원대 복귀’ 시킨 것이다. 2차 대전 승전과 대공황 극복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루스벨트는 민주당의 상징으로 추앙받아왔다. 반면 잭슨은 트럼프가 대통령의 본보기로 흠모해온 인물이다. 대통령 정권 교체에 맞춰 대통령 롤모델도 정권 교체된 셈이다.
고아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미국 역사상 첫 평민 출신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잭슨은 미국 영토를 대폭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었는데 당시 민주당의 노선은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연방 정부 규모의 축소를 꾀하는 등 지금 공화당 노선에 가까웠다. 현재의 공화당은 잭슨 사후(死後)인 1854년에 창당됐다.
잭슨은 1836년 멕시코 치하 텍사스의 독립을 지원·승인함으로써 향후 텍사스가 미 합중국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불법 이민자를 남부 국경 밖으로 대거 추방하고, 그린란드 매입과 파나마 운하 통제권 확보 등 대외 영향력 팽창을 꾀하는 트럼프에게 더없는 롤모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잭슨은 영토 확장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고향에서 대거 추방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는 포퓰리즘과 반기득권 물결을 타고 집권한 후 당을 자신의 이미지로 재탄생시킨 잭슨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1기 때 집무실 벽난로 근처 테이블에 뒀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흉상도 4년 만에 다시 들여왔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단력으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역시 트럼프의 롤모델로 알려져 있다. 벽난로 위에는 미국의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 장식물이 새롭게 추가됐다.
트럼프 1기 집무실의 상징이었던 빨간색 ‘콜라 버튼’도 4년 만에 돌아왔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다이어트 콜라를 하루에 12캔 정도 마시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는 1기 때 콜라가 마시고 싶을 때마다 집무실의 ‘콜라 버튼’을 누르면, 보좌진이 집무실로 콜라를 가져왔다. 2021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이 이 버튼을 없앴고 대신 집무실 밖에 초콜릿 칩 과자를 쌓아두었다고 한다. 콜라 버튼이 다시 돌아오면서 초콜릿 칩 과자는 사라진 것이다.
트럼프 2기 개막에 맞춰 백악관 홈페이지도 ‘트럼프 스타일’로 새단장했다. 메인 화면 연결 전 대통령 전용 헬기에서 내려 군인으로부터 경례를 받고, 백악관 하늘에서 펼쳐지는 에어쇼, 흰머리수리,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30초 분량의 동영상을 배치했다. 메인 화면에서는 트럼프 사진과 함께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대형 문구를 내세웠다.
트럼프 특유의 ‘소셜미디어 정치’도 재개됐다. 트럼프는 취임 이튿날인 21일 자정이 되자마자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우리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구호) 비전과 어울리지 않는 전임 정부 임명자 1000여 명을 식별하고 제거하고 있다”며 마크 밀리 국가인프라자문위원(전 합참의장) 등 네 명을 우선 해고자로 공지했다. 밀리 위원은 트럼프 1기였던 2019년 합참의장에 취임했지만 이듬해 벌어진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시위(BLM·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당시 병력을 투입해 진압하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에 반대하며 눈 밖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