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이른 아침 자국 출신의 미국 불법입국자들을 태운 C-17 미 군용 수송기 2대의 영공 진입을 불허했던 콜롬비아 정부가 입장을 바꿔서, 자국의 대통령 전용기를 보내서 이들을 태워 입국시키겠다고 26일 밤 발표했다.

미국 백악관도 이날밤 콜롬비아가 “추방자들을 태운 미 군용기의 콜롬비아 입국을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조건을 수용했다”며, 앞서 발표한 25% 보복 관세 부과와 비자 발급 중단 등의 조치는 콜롬비아의 약속 이행 여부를 보며 보류한다고 밝혔다.

앞서, 콜롬비아의 첫 좌파 대통령인 구스타보 페트로는 미국 정부가 자국 출신의 불법 입국자들을 추방하자 “그들을 받기 전에 미국 정부가 이민자들에 대한 품위 있는 대우를 보장하는 절차를 확립하라”며, 콜롬비아인 불법입국자 200여 명을 태운 미 군용기 2대의 영공 진입을 불허했다. 이들 불법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수갑과 족쇄에 채워져 미 군용기에 탑승하는 동영상이 TV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됐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1980년대에는 게릴라로도 활동했으며, 2022년 8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1980년대에는 게릴라로도 활동했으며, 2022년 8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또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것인지 물으며 “당신[트럼프]은 우리 자유를 안 좋아할 수 있지만, 나도 백인 노예상인과 악수할 생각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콜롬비아의 미 군용기 진입 불허 수 시간만에,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콜롬비아산(産) 수입품에 즉각 25%의 긴급 관세를 부과하고, 1주일 내에 이를 5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콜롬비아에 대한 금융ㆍ은행 제재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콜롬비아 정부 관리들에 발급한 비자를 즉각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이날 소셜미디어 X에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미국 대사관은 즉각 미국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페트로 대통령도 트럼프의 25% 긴급 관세 부과에 맞서, 미국산 제품에 대해 동일한 세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 그러나 트럼프는 “당신의 봉쇄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고 썼다. 트럼프는 페트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

미국은 콜롬비아에게 최대 무역거래국으로, 콜롬비아 무역의 26%(약 550억 달러)가 미국과 이뤄진다. 따라서 25%, 50% 관세 부과는 콜롬비아 경제에 회복 불능의 치명적 충격을 줄 수 있다.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콜롬비아의 주요 수출 품목인 꽃 수출이 큰 타격을 입고, 콜롬비아산 커피도 미국에서 급등하게 된다. 백악관은 콜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발표하면서, ‘Colombia’를 ‘Columbia’로 오기(誤記)하기도 했다.

결국 예상되는 경제적 충격에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콜롬비아 정부는 180도 입장을 바꿨다. 콜롬비아 정부는 26일 늦게 발표한 성명에서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오늘 아침 추방 항공편으로 콜롬비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국민들의 품위 있는 귀국을 돕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를 제공했다. 이 조치는 품위 있는 조건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공약에 부응하는 것이며, 콜롬비아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애국자이자 권리를 지니고 있는 자로서 콜롬비아 영토에서 추방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추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는 또 “앞으로도 미국 정부와 활발한 대화를 통해서, 우리 국민이 추방 절차에서 최소한의 존중과 품위 있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협정을 체결하고자 노력하겠다”고 했다.

미 군용기에 실려 미국에서 추방된 불법이민자들이 1월24일 과테말라 시티의 과테말라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에도 수갑과 족쇄를 채운 불법이민자 88명을 브라질로 보냈다. 브라질 외무부는 “품위를 떨어뜨리는 대우”를 항의했지만, 이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여러 중남미 국가가 트럼프의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 계획에 우려를 표해 왔으나, 송환되는 자국민 불법이민자에 대해 실제적으로 거부 행동을 취한 것은 콜롬비아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미국ㆍ콜롬비아 간 불법이민자 추방 프로그램은 수년 전 체결된 협정에 따른 것이었고, 콜롬비아 정부는 이미 주 2회꼴로 미국에서 추방된 자국민 불법이민자의 항공 입국을 수용했었다.

다만 그동안의 불법이민자 추방은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주도로, 이미 운항 노선이 있는 민간 항공기를 통해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이민자 추방을 촉진하기 위해 군용기를 추가했다. 군용기는 미국을 출발하기에 앞서, 도착 국가의 영공 진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페트로 대통령이 기존의 불법이민자 추방 관행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페트로의 자국민 불법이민자 수용 거부는 트럼프의 이런 대규모 추방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었고, 트럼프는 저항하는 콜롬비아를 본보기로 전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