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형 로펌들과 명문대에 각종 제재를 가하며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를 요구하자 실제 일부 이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엄연한 민간 영역인 법률·교육계에 국가 권력이 이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이유는 돈이다.
2023 회계연도 기준 연방 정부가 각종 로펌에 법률 서비스를 계약한 규모가 5억달러(약 7000억원)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 정부는 특정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법무부 소속 변호사뿐 아니라 외부 로펌에 법률 자문을 하거나 소송을 대리할 수도 있다. 정책에 반대하는 주 정부나 시민 단체 등이 위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헌 소송 최종심을 맡는 대법원 대법관들의 이념 구도는 보수 6, 진보 3이다. 보수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진보 진영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로펌이 영업하기 어려울 만큼 보수 우세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행정 명령을 통해 사실상 좌표를 찍은 특정 로펌의 명단이 ‘블랙 리스트’처럼 돼 고객 이탈 조짐을 보이자 로펌들이 몸을 사리며 백기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도 이런 움직임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 재정 자립도가 높은 최상위 사립대도 연방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이 적잖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던 1945년, 미국 과학연구개발국 책임자였던 배너버 부시 박사가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공립·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연구 기관을 지원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세계 대전 당시엔 독일, 냉전 시기엔 소련과 군사·과학 기술 대결을 했던 미국에선 ‘대학 지원이 곧 국력 강화’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AP에 따르면 대부분 대학에서는 연방 보조금이나 계약으로 전체 수입의 약 10~13%를 정부에서 받는다. 하버드대 등 연구 중심 대학은 그 비율이 더 크다. 지난해 하버드대는 전체 연구비의 약 68%에 달하는 6억8600만달러(약 9700억원)를 연방 보조금으로 충당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연구 역량이 우수한 대학일수록 각종 정부 연구 사업이 몰리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은 대학 연구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보조금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가 삭감된 코넬대는 국방부가 지원하는 연구 75건을 중단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7억7000만달러(약 1조900억원) 보조금이 동결된 노스웨스턴대는 초소형 심장 박동기 개발, 알츠하이머 연구 등에서 차질을 빚게 된 상황이다.